지하철 2호선 을지로 3가 역과 4가 역 사이 골목에 위치한 산수갑산. 숨어있는 맛집이라기에는 유명세가 있지만, 그렇다고 대중적으로 엄청 유명하다고 볼 수는 없는 곳입니다. 일단 제가 아는 바로는 맛집 가이드북이나 맛집 소개 사이트, 어플 등에는 올라온 곳이 없구요. 미디어의 소개 기사가 있나 검색해봐도 나오는 게 없네요.(개인 블로그에는 올라온 곳이 꽤 있습니다만)


가게 이름은 사실 '삼수갑산'이 맞는 표현입니다만, 여기 말고도 산수갑산이라는 이름의 가게들이 꽤 있는 것 같더군요.



순대 전문점이 대부분 그렇듯 메뉴판은 단출합니다. 요즘 물가 생각하면 가격은 저렴한 편.



순대모듬×2(28,000). 대창순대, 머릿고기, 내장부속이 섞여져 나옵니다. 그런데 대창순대라는 것이 흔하지 않은 물건이다 보니, 산수갑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창순대에 방점을 찍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순대도 물론 뛰어납니다만 이 순대모듬(표준어는 '모둠')의 백미는 내장부속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내장부속 중에서도 귀와 간이 정말 맛있는데, 특히 귀를 가장 맛난 부위로 꼽고 싶네요. 졸깃하고 존득한 젤라틴질과 부드러운 저항감이 느껴지는 연골의 하모니는, 잘 삶아낸 돼지 귀는 이렇게까지 맛있을 수 있구나, 산수갑산에 안 갔으면 돼지 귀가 가진 포텐을 평생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마저 드는 맛이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귀를 안 주신 날이 있어 말씀을 드렸더니 조금 후에 귀를 내주셨는데, 평소보다 오버쿡이 됐는지 영 딱딱한 것이, 상태가 별로라 안 주셨구나 싶었네요.)


간도 정말 일품인데, 매트한 느낌은 들지만 퍽퍽하지는 않은, 그러면서 농후한 맛이 혓바닥에 코팅되는 느낌이 너무 훌륭합니다. 여기에 촉촉한 머릿고기와 쫄깃한 대창순대, 암뽕(새끼보), 돈설, 오소리감투 등도 모두 퀄리티가 좋아, 이렇게 다양한 맛과 식감을 맛나게 즐길 수 있는 순대모둠이 또 있을까 싶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맛 좋고 촉촉하게 삶아낸 만큼 약간의 와일드한 풍미가 남아있기도 하니, '나는 비위가 안 좋아서 평소에 순대국도 안 즐기지만 여기는 맛있다고 하니 함 먹어보겠다.'는 분 혹시 계시다면 참고하시구요. 대창순대의 경우 대창이 얇은 부위도 있고 두꺼운 부위도 있는데(얇은 건 대창, 두꺼운 건 막창이라는 얘기도), 쫄깃한 맛이 좋으시다면 두꺼운 부위 위주로 주실 수 있나 주문해보시고, 두꺼운 부위가 너무 질긴 것 같아 싫다는 분은 반대로 얇은 부위로 달라 주문해 보세요. 저는 두꺼운 부위를 좋아합니다만.



순대국은 보통으로만 주문해도 건더기가 아주 푸짐합니다. 순대모둠에는 나오지 않는 부위도 일부(허파 등) 들어가 있구요.(허파도 잘 삶아내니 맛나더군요.) 그런데 국물의 진하기가 약간 오락가락하는 느낌이 있어, 국물이 진할 때는 순대국만 먹어도 매우 만족스러운데, 그렇지 않은 날은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구요.(국물이 진한 날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찐한 느낌이 드는 건 아니고, 보통으로 진하지만 충분히 맛있는 정도? 한가한 토요일과 공휴일이 국물 연한 것 같기도 하고) 국물 맛이 진하든 연하든 냄새가 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혼자 가시는 분에게 추천하는 안전빵(?) 메뉴는 순대정식이 되겠습니다. 위 사진이 순대모듬(14,000)인데, 이것의 절반 분량이 밥(&국물)과 함께 나오는 게 순대정식(8,000)이죠. 실제로 순대정식 2인분 주문하면 이와 동일한 양과 구성의 것이 나옵니다. (저녁에는 순대정식 주문을 안 받는다는 얘기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산수갑산은 정말 훌륭한 가게고, 보통으로 맛있을 때도 완전 맛있지만, 정말 맛있을 때는 남한에서 여기보다 맛있는 순대집은 없을 것 같을 정도로 맛나더군요.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산수갑산이 소개된 콘텐츠는 개인 블로그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수많은 맛집들을 맛집 가이드북이나 사이트, 어플에서 모두 소개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 정도로 맛있는 가게가 소개된 맛집 콘텐츠가 없다는 점이 (그리고 엉뚱한 가게들은 참 많이들 소개한다는 점이) 한국 미식씬의 문제 중 하나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프랑스나 일본에서라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나 타베로그 평점 4점 이상의 가게가 아무런 맛집 콘텐츠에도 소개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될까요? (미슐랭이나 타베로그의 신뢰도에 대한 건 다른 문제겠구요.)


맛 평점 = 9 (10점 만점)


※ 음식의 맛 평가는 가능한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업소 방문은 2015년 1월, 3월, 4월에 이루어졌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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