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od of Love (2004년 미국, 2009년 11월 30일 한국)



시라노 드 벨주락의 이탈리아 요리사 버전.


이탈리아에 미술사를 공부하러 온 금발머리 미국인 아가씨를 이탈리아 플레이보이가 꼬시는 와중에 자신이 요리사라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요리사 친구에게 요리를 만들게 하는데, 실은 그 아가씨는 요리사 친구가 남몰래 흠모하고 있던 여인이었으니...


원제(The Food of Love)가 제목으로 더 걸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래도 좀 밋밋하기는 하니까.


이 책의 요리 부분은 꽤나 볼만하다. 재치있게 이탈리아 요리를 소개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책에 등장하는 요리가 맛있게 느껴지고 먹고싶은 욕구가 생기게 만든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책을 읽는 것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 식당에 가는 것과 같다."는 평을, 피플은 "감각적인 산문이 이탈리아의 풍광과 냄새, 맛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제이미 올리버 또한 "읽는 내내 매혹적인 이탈리아 요리를 맛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그러나 스토리적인 부분에서는 별로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대략 할리퀸과 칙릿을 섞어놓은 듯한 모양새를 보여주는데, 요리에 대한 부분이 진지한 만큼 스토리에서도 보다 진지한 느낌이 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할리퀸 독자는 할리퀸을 읽고 칙릿 독자는 칙릿을 읽으면 되겠지만, 이 책이 할리퀸이나 칙릿 독자를 위한 책인가 하는...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읽는 다면 추천할만 하다. 책 말미에는 책에 등장하는 요리의 레시피도 나오니 내킨다면 요리를 시도해 볼 수도 있겠다. 요리에 따라 좀 힘들긴 하겠지만서도. 토끼고기 요리와 포르케타(이탈리아식 돼지 통구이)는 아무래도 개인이 집에서 만들기는 쉽지 않을 테니.

Spiced to Death (1997년 영국, 2011년 7월 28일 한국)



미식가탐정의 이번 사건은 뉴욕에서 벌어진다. 500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향신료의 감정 의뢰를 받아 (런던에서) 뉴욕으로 날아간 우리의 미식가탐정. 향신료 감정으로 일이 끝난 줄 알았건만...


전작 "프랑스요리 살인사건"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인공인 미식가탐정은 실은 탐정이라기보다는 푸드 컨설턴트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으며, 탐정 면허도 없는 무늬만 탐정인 그런 사람이다.(미식가탐정-Gourmet Detective-은 일종의 별명 같은 것이라 보면 되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책 또한 마찬가지로 제목에 '살인사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이라기보다는 미식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탐정소설 형식으로 써내려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에서 추리적인 부분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양념에 불과하고 핵심은 미식에 있는지라, 심각하게 사건과 범인을 추리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비추하지만, 미식을 좋아하는 식덕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소설로는 이보다 나은 것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식덕이 아니라면 책이 얼마나 재미있게 느껴질지는...


단, 전작인 "프랑스요리 살인사건"이 탐정소설 매니아와 식덕으로서의 소양을 둘 다 요구한 소설이었다면(거기에 음악에 대한 지식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이번 "스파이스 살인사건"에서는 식덕으로서의 소양만이 필요한지라, 재미를 느끼기 위한 허들이 조금은 낮아졌다고 볼 수 있으려나. 어쩌면 탐정소설과 미식을 둘 다 좋아하는 독자층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작가가 변화를 준 것일 수도?


전작과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인종 전시장이자 문화의 용광로인 뉴욕이 무대인 만큼 주인공이 방문하는 식당과 등장하는 음식의 종류 또한 더욱 다양해졌다. 중동요리, 중화요리, 캐나다요리, 멕시코요리, 오스트리아요리, 아프리카요리에 이르기까지...(여담이지만 역시 뉴욕이 무대인 1989년작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면, 조크의 소재로 아프리카 식당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역시 뉴욕...이라는 느낌이랄까.)


미식가탐정 시리즈는 총 8편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국내에는 2탄인 "스파이스 살인사건" 이후로는 출간이 불투명한 느낌이라 식덕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모쪼록 지금부터라도 보다 많은 분(식덕)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The Gourmet Detective (1994년 영국, 2010년 7월 19일 한국)



주인공은 런던의 미식가탐정(Gourmet Detective). 진짜 탐정은 아니고 푸드 컨설컨트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하는 일은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나 와인을 찾아주거나, 새로 오픈하는 식당의 컨셉에 대한 상담(예를 들면 중세요리 전문 레스토랑) 등이다. 그런데 어느 날 런던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한 곳의 주방장이 찾아와서는 라이벌 가게의 인기 메뉴 레시피를 알고 싶다는 의뢰를 하는데...


미식가탐정은 미식가이자 탐정소설 매니아이며 음악 애호가이기도 한데, 덕분에 책에는 온갖 음식과 탐정소설이 끝이지 않고 계속해서 등장하며, 주인공이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항상 분위기와 상황에 맞는 음악을 트는 모습을 볼 수 있다.(그러니까 아마도 셋 다 작가의 취미겠거니 하는 생각이고)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독자층이 좀 한정되는 느낌이라, 음식과 탐정소설과 음악에 지식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은 분이라면 얼마나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지...(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면 더 재미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는 아니긴 한데) 비유하자면 자동차도 레이싱걸도 잘 모르는 여성이 모터쇼를 보러 가는 것과 자동차도 레이싱걸도 잘 아는 남성이 모터쇼를 보러 가는 것과 비슷한 차이가 있달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주된 소재는 미식이며 탐정소설이라는 형식은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도구에 불과한지라, 심각하게 사건과 범인을 추리하기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스토리를 편안하게 즐기시는 게 옳은 감상법일 듯.


특이한 점이라면 한국에 대한 언급이 몇 번 나오는데, 작가가 한국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간 식덕에게 이 정도 재미를 안겨줄만한 소설은 그닥 없으리라 생각되며, 식덕에게는 감히 축복과도 같은 소설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듯.

  

PS : 책 249p를 보면 "골르아즈"에 대해서 달걀노른자를 넣은 닭고기 요리라는 주석이 달려있지만 정황상 담배인 듯한데...

Der Duft Des Kaffees (2005년 독일, 2006년 8월 한국 초판, 2011년 12월 한국 재판)



커피와 카페 문화가 인문 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이 얘기에는 대체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만약 커피가 없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이 소설은 후자의 질문에 대해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내용인즉슨, 어느 날 독일에서 가장 큰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집단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은 누가 어째서 일으킨 것이며, 그렇다면 커피를 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만약 커피가 없어진다면...이라는 것인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커피의 역사와 문화, 커피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들에 대해 서술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말하자면 커피가 이렇게 대단한 영향을 끼쳤으니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그런 것이랄까. 따라서 커피 애호가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곳곳에 산재해있고, 그러한 내용들이 책의 재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반대로 커피를 잘 모르는 분들은 재미를 느끼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범인의 추적과 사건의 해결을 중점으로 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를 느끼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다.(사실 본인이 추리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한 탓에 재미를 좀 잃어버린 경우)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커피 덕후의 색다른 커피 예찬론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커피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식견과 애정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브리오니는 개인 커피점을 운영하는 커피 로스터인데,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 커피농장을 방문하고, 자신만의 이상적인 배합을 가지고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는 커피 장인이며, 대형 커피 회사들의 저질 커피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다.(그런 커피는 나도 진짜진짜 싫다.)


라떼나 아메리카노보다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분께서(핸드드립이라도 상관없겠고),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맛 좋은 개인 커피점들을 찾아다니는 분께서 커피를 소재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편 읽고 싶다면 추천드리고 싶다.(노파심에서 하는 얘긴데 사건이나 범인에 너무 집중하지 않는 것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이 책에 나오는 커피의 유럽 전파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책 내용 중 오스만 투르크(터키)가 빈(비엔나)을 침공했을 때 오스만 투르크가 패하면서 남기고 간 커피가 오스트리아에 들어왔고(1683년) 그 이후로 유럽 전역에 커피가 퍼졌다는 내용이 있다. 한데,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 '파스카 로제'는 1652년에 생겼고(그 이전에 1637년 옥스퍼드에 커피하우스가 생겼다고도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1645년에(1630년이라고도) 최초의 카페가 오픈했다고 하니 유럽 커피문화의 진원지가 어디였는지에 대해서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지 아리송한 구석이 있다.(커피의 기원 자체는 아랍의 이슬람 문명이며, 세계최초의 커피 하우스는 1475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 생겼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하는 것 같지만)


어떤 문화가 시작된 지역과 번성한 지역이 꼭 같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긴 하지만, 자세한 문제는 전문 사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할까나.

TOO MANY COOKS (초판 발행 1977년 12월 1일, 중판 발행 2003년 1월 1일)


세계 최고의 명요리장들이 5년마다 모이는 정기 모임.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는 이 모임의 주빈으로 초대받아 명 요리장들의 요리를 먹고 마시며 '고급요리에 미친 미국의 공헌'이라는 연설을 하러, 조수(겸 수행비서격인) 아치 굿드윈과 함께 뉴욕에서 머나먼 남부 시골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데...

이 책 정말 오래된 책이다. 1930년대에 쓰여지기도 했지만 77년에 번역된 책이니 말이지. 덕분에 사용된 단어나 표현 등이 오래된 느낌도 들고, 지금은 다른 식으로 적는 외국어(인명, 요리명 등)도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글레비(그레이비), 파세리(파슬리), 블리아 사발랑(브리야 사바랭), 시들(시드르) 등. 2003년에 중판이 나왔지만 아마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냥 찍은 듯.

주인공인 네로 울프가 미식가 탐정이라고 하여 전부터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마술사가 너무 많다"를 읽고, 그 제목과 캐릭터가 "요리장이 너무 많다"의 패러디라는 해설이 있어 그럼 이참에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다 읽고 나니 두 작품의 연관성은 제로에 가까운지라 꼭 둘 다 보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

렉스 스타우트가 네로 울프를 미식가로 만든 것은 작가 본인이 파리 체류 시절 미식가로 눈을 뜬 것에 기인하는데, 작중에서 네로 울프는 집에 전속 요리사를 상주시켜 자신이 먹고 싶은 온갖 요리를 모두 만들게 하고, 세계 최고의 명요리장 중 한 명인 마르코 뷰크식의 친구이며, 명요리장 중 최연장자인 루이 세르반에게 명요리장 모임에서 연설을 부탁받기도 하는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미식가라 할 수 있다.(엄청나게 뚱뚱하기도 하고)

런데 네로 울프의 특이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증거 수집은 모두 다른 사람(조수인 아치 굿드윈, 클래머 경감 등)을 시키고, 증인 심문은 자기 방으로 사람을 불러서 하며, 집에서 1만 그루의 난초를 키우고, 돈을 엄청나게 밝힌다.(이런 생활을 유지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긴 하겠다만)

책 내용에 있어서는 사건 전개가 "절대미각 식탐정" 식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특별히 미식에 식견이 없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2012년 현재 이 책을 읽어야 할 당위성은 그닥 찾아보기 힘들지 않나 하는 느낌. 이 책에 적당한 독자라면 30년대 미국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기에 읽고 넘어가야겠다는 추리소설 매니아 또는 본인처럼 먹거리가 관련된 콘텐츠에 흥미가 많은 사람 정도 아닐까.

물론 미식에 대한 식견이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구석이 있고, 미식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조금 이해가 안가는 구절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요즘 사람들은 서양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하겠지만, 과연 77년 초판 발행 당시의 독자들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책 뒤에 인명과 요리명이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기는 한데, 정말 '간단'하게 되어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에스코피에 - 프랑스의 근대 명요리사", "글래쉬 - 헝가리의 쇠고기 요리" 뭐 이런 식이라.

석한 점은, 원서에는 책에 나오는 명요리장의 18가지 요리 레시피가 실려있다는데, 역자 분께서 친철(-_-)하게도 "일반 독자에게는 그다지 흥미가 없으리라고 생각되므로 소개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해놓으셨다. 확실히 77년의 독자들에게는 흥미를 떠나서 이해가 힘든(또는 번역이 힘든) 내용이었겠지만...

하지만 네트는 광대하기에 INSPIRED BY WOLFE라는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블로그에서는 네로 울프가 먹은 음식들을 직접 요리하여 그 과정과 완성품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유감스럽게도 자세한 레시피는 나와있지가 않은데, 것도 그럴 것이 본토에서는 아마도 각 작품마다 나오는 음식에 대한 레시피가 첨부되어있을 것이고, The Nero Wolfe Cookbook이라는 책까지 나와있을 정도니 굳이 자세한 레시피를 적을 필요도 없고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할 것 같다. 그래도 이 블로그 덕분에 가장 궁금했던 요리를 알 수 있었으니... 울프가 너무나도 간절하게 레시피를 원했던 "소시스 미뉴이"가 뭔지를 알게 됐는데, 그 정체는 거위와 꿩으로 만든 소세지였다는.

참고로 사건의 무대인 "카노와 수퍼"는 원서에는 "카노와 스파(spa) 리조트"라고 되어 있다고. 역시나 77년 번역의 한계와 문제점일 텐데, 요즘 번역이었다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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