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일본 라멘집이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정도지만, 서쪽(홍대)은 하카다문고, 동쪽(건대)은 우마이도로 양분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지요. 하지만 제 나와바리에 있는 하카다문고는 별로 마음에 들지가 않았어요. 일본 맛이긴 한데 맛있는 맛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면은 푹 익고 냄새 또한 심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죠. 냄새는 뭐 고유의 레시피가 있다고 치겠는데, 면은 일본식으로 딱딱하게 주든지 아님 주문받을 때 물어보든지 했어야 하는게 아닌지... (요즘에는 기본이 딱딱하게 나오거나 주문시 물어보는 곳이 꽤 있죠.)

사실 하카다문고가 마음에 안드는 이유는 이런 지엽적인게 아니라 국물의 맛과 농도가 문제인데요. 일단 국물 맛은 돼지뼈만 우린 듯한 맛이긴 한데, 농도도 진하지가 않고 맛도 깊은 맛이 없어요. 그것보다 더 찐하면 어쩌라는 거냐는 말씀들 하실텐데, 제 느낌에 하카다문고 국물은 깊은 맛이 날 정도로 사골국물 함량이 진하지가 않아요. 찐득한 느낌은 콜라겐과 지방질에서 나오는 거구요.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돼지뼈를 더 우리거나 다른 재료를 첨가해야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더 완성된 무언가를 만들기 보다는 기본을 지키는 선에서 멈춘 것이 하카다문고의 레시피가 아닌가 하는 생각(추측)이네요. 좋게 말하면 돈코츠로 만든 돈코츠 라멘 일텐데, 요즘 설렁탕집이라고 해서 소뼈만 넣어서 국물 우리지는 않거든요. 국물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쇠고기도 넣고 하죠.

뭐 그래서 하카다문고는 안가고 있었는데, 건대에 우마이도라는 가게가 맛있다는 얘기가 들려오더군요. 가봐야지라는 생각은 여러 번 했지만 거리가 멀다보니 생각만 하고 가지를 못하고 있던 중에, 홍대 푸르지오 상가 지하의 멘야 도쿄라는 가게를 들리게 되었죠. 그리고 거기서 저는 정말로 맛있고 찌인한 돈코츠 국물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지요.(냄새도 안나구요.) 그러나 하카다문고에서 손님 줄을 세우고 있던 사이에, 멘야 도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찌인한 돈코츠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덮밥이 맛있는 곳이라는 오명을 쓰고, 정작 맛있는 돈코츠 라멘은 몇몇 마이너 블로거들에게나 인정받는 그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가 결국 올해 초인가에 없어지고 말았죠. 면은 자가제면이 아니었기 때문에 좀 떨어지긴 했지만 국물은 정말 최고였는데, 없어지고나서 그 안타까움이란... ㅠㅠ
[라멘 전문 블로거 모님의 얘기에 의하면 멘야 도쿄가 처음부터 진한 돈코츠 국물은 아니었다고. 오히려 좀 어중간한 맛이었다는 얘기가. 하지만 맛이 좋아진 다음에 방문한 사람들도 다들 덮밥 얘기만 하고 있지 진한 돈코츠 국물 좋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는 거. 그저 한심하고도 슬픈... ㅠㅠ (12/06/13 추가)]

그러고나서 여기저기서 라멘을 먹어보았지만 멘야 도쿄의 빈자리를 채워줄만한 그런 곳은 찾을 수가 없었죠. 가본 가게들 중 유타는 꽤 마음에 들었는데, 국물의 농도가 멘야 도쿄에는 미치지 못해 아쉽더군요. 대략 유타로의 국물을 2배 정도 찐하게 만들면 멘야 도쿄 국물이 된다고 보시면 될 듯. (우마이도는 역시 아직도... 과연 올해 안에 갈 수 있을지?)

그러던 중 신촌에 괜찮은 라멘집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게으름 피우다가 몇 달 후에) 방문한 것이 가마마루이 라멘입니다.


가마마루이 라멘 사장님은 원래 신촌 현대백하점 옆 골목에 코코로 라멘이라는 업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돈부리가 맛있기로 나름 알려진 곳이었으나, 뜻한 바가 있어 라멘에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장소도 이전하고 이름도 바꾸고 해서 새롭게 시작하셨다는.


반찬으로 먹을 수 있게 가게에서 만든 마파두부와 단무지 무침이 제공되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을 수 있도록 밥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요금은 따로 받지 않지만 셀프로 가져다 먹어야 하는데요, 주문한 라면이 나오기 전에, 밥을 조금 퍼서 마파두부를 위에 올린 다음 단무지와 함께 먹고있는 젊은이들이 종종 보이더군요.


온센다마고(1천원). 퀄리티 괜찮습니다.


돈코츠 라멘(7천원). 국물 농도와 면 익힘의 주문이 가능한데요. 국물은 아주 진하게, 면은 딱딱하게로 주문했습니다. 국물도 면도 모두 마음에 드는군요. 국물은 멘야 도쿄보다는 좀 못하지만(맛의 방향도 좀 다르고 농도도 약간 연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적어도 마포구 안에 있는 라멘집 중 제 입에는 제일 낫네요. 면은 자가제면 하시는데 맛있게 잘 만드셨구요. 차슈의 퀄리티는 보통이지만, 그 외에는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국물 간도 잘 맞추셨고, 혹시 간을 더 하고싶은 분들을 위해 테이블에 타래(양념장)도 준비되어 있네요. 매운맛을 즐기시는 분들은 카라미소를 넣으시면 되구요. 저도 면을 다 건져먹고 국물에 밥말아 먹을 때 카라미소를 좀 넣어봤는데요. 맛이 괜찮더군요. 라멘 국물에 밥 말아먹으면 맛이 어떻냐구요? 멘야 도쿄에서 돈코츠 국물에 밥 말아드셔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 정도로 진한 돈코츠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그 맛은 다른 음식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충족감이 있지요. 가마마루이 라멘도 멘야 도쿄의 그 느낌을 재현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그래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위안받을 정도는 됩니다.

이런 주문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음에 가게되면 국물은 아주아주 찌~인하게, 면은 아주 딱딱하게로 함 먹어보고 싶네요. 그러면 멘야 도쿄의 맛에 근접할 수 있을지도요.


저는 개인적으로 홍대에 이퓨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홍대에서 라멘 먹을 일은 없을 것 같구요. 라멘이 생각날 때는 신촌 가마마루이 라멘을 찾으렵니다. 근데 이퓨도는 도산공원 앞의 1호점에 이어 가로수길에 2호점이 생긴다고... 홍대는 언제쯤 들어올 예정인지?

※ 음식의 맛 평가는 가능한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업소 방문은 2011년 10월에 이루어졌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91-6 
02-3142-3929
12시-3시, 5시-9시30분
일요일 공휴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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