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역 부근의 라멘집 라멘토모가 없어졌다. 없어진 지 이제 몇 달 되었을 것이다.


라멘토모는 국내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 더블수프 방식(다른 성격의 국물 두 가지를 합쳐서 국물을 완성하는 방식)의 라멘을 만들었던 곳으로, 대표 메뉴인 토모 라멘의 국물은 (말린) 생선 수프와 돈코츠 수프를 합친 것이다.(검색해보니 토모 라멘은 나중에 토모 돈코츠 라멘으로 메뉴명이 바뀐 듯.)

 


국물을 한 입 마시고 나면 생선 수프의 향긋한 향기가 입안을 감도는데 느낌이 꽤 좋다. 하지만 조금 먹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돈코츠에 밀려 생선 수프의 향은 느껴지지가 않는다. 생선 수프 자체의 지구력이 약한 건지, 돈코츠와의 혼합비가 문제인 건지, 아님 다른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렇다.


결국 더블 수프의 특성이 사라지면서 이도 저도 아닌 국물이 되어버려, 매력도 없고 개성도 없는 어중간한 느낌밖에는...

 

 

면은 자가제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퀄리티는 그닥이었다. NG까지는 아니었는데 자가제면이라 하기엔 수준이 좀 별로였달까. 물론 여기보다 더 수준 낮은 자가제면 라멘집도 있지만서도...(자가제면이 아니었다는 지적이 들어왔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뿐더러 이 글에서 별로 중요한 포인트도 아니니...)

 


반면에 교자의 경우는 정말 극강의 퀄리티를 보여준 물건이었다. 서울 바닥을 통 털어도 이 정도 교자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으리라. 부드럽고 바삭하면서 속에 넘치는 육즙은...


그런데 인터넷을 암만 뒤져도 교자 맛있다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인스턴트 냉동만두보다 못하다는 악평까지 있을 정도. 이는 아마도 교자의 스위트 스팟이 매우 짧은 탓에, 맛있을 시간을 넘겨서 먹은 사람이 악평을 써놓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나로서는 중국집 서비스 군만두가 만두의 기준이 되어버린 세태가 반영된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보다 맛있는 음식은 보다 맛있게 즐길 줄을 알아야 하는 법이니.


비슷한 경우로 동인천 용화반점의 군만두도 스위트 스팟이 매우 짧다. 만두피가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상태라 뜨거운 김만 가시면 바로 먹어야지, 안 그럼 조금만 지나도 바삭한 껍질이 바로 눅눅해져서 식감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는 라멘토모의 교자도 마찬가지로 바삭한 부분이 눅눅해지는 순간 식감은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치닫는다.


교자는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라멘의 맛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사실 간도 조금 더 진해야 하지 않나 싶었으나 한국인 입맛에 맞춰서 간을 살짝 약하게 하신 듯했고...


라멘토모는 원래 방배쪽에 있었으나 홍대로 이전을 한 것인데, 방배쪽에 있었을 당시 블로그 여기저기서 칭찬을 듣곤 하는 곳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마도) 국내 최초의 (본격) 더블 수프 라멘이라 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점도 있을 것이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경쟁자가 없는 방배에 계속 있으셨더라면 가게가 (망해서) 없어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지... 아니면 적어도 좀 더 롱런하실 수 있지는 않았을지... 라멘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홍대 이전을 결심한 것에 블로그의 좋은 평들이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지... 하는 생각들이 든다.[라멘토모 사장님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일본 원전 사고 탓에 재료 수급에 문제가 생겨 문을 닫게 되셨다고. 다만 본인으로서는 당시 주변의 라멘집들에 손님이 줄서 있을 때 라멘토모는 상대적으로 그리 바쁘지 않았던 모습만을 보았기에 수익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 2014/01/30 첨부]


차라리 돈코츠를 버리고 생선 수프를 강화시켜서 국내 최초의 해산물 라멘을 만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적어도 누군가가 생선 수프와 돈코츠 수프 간의 불균형을 좀 더 일찍 지적해줬다면 개선점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라멘토모의 흥망성쇠와 블로그 간의 상관관계가 별로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블로그가 식당의 (특히 신규업소의) 흥망성쇠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그간 무수히 보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차피 블로거들이 대부분 음식 전문가도 아니니 식당과 음식을 평함에 있어 수준 높은 식견과 중립적인 평가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전문가가 아님을 생각한다면 음식점을 칭찬하든 비판하든 그것을 블로그에 올리는 데는 좀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블로그를 취미생활이라 하고 내 공간에 내가 적고 싶은 것을 적는다는 분들이 많지만, 블로그가 가진 미디어적인 성격을 생각해볼 때 그런 생각에는 찬성할 수가 없다. 내 취미생활에 어떤 가게가 망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들이 있으신가 말이지.


본인은 블로그에 식당을 평할 때 개인적인 가이드라인이 있다. 맛있는 곳은 칭찬하고, 싹수가 있어 보이는 곳은 장단점을 지적한다. 맛없다 느끼는 곳을 비평하는데 있어서는 장사가 잘되고 본인의 평에 영업이 지장을 받지 않는 곳에 한한다.(예를 들어 이전 후 맛이 변한 하동관, 선친 작고 후 맛이 변한 을밀대, 커피 맛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곳은 아닌 전광수 커피 등이 그런 곳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비싼 곳은 비싸기 때문에 고객이 음식점에 대해 좋은 평이든 나쁜 평이든 평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끼에 몇만 원에서 십몇만 원 씩 써가면서(혹은 그 이상을 쓰면서) 그 정도도 못 한다면 말이 안 되지 않나.(다만 지저분하게 남의 블로그에 악플 달면서 싸우지는 말고.)


물론 본인의 가이드라인이 어떤 절대성을 띄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많은 블로거들이 자기 블로그의 가이드라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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