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토리아는 이탈리아의 식당 등급에 있어 리스토란테(레스토랑)보다 좀 더 편안히 접근할 수 있는 곳을 뜻합니다. 프랑스의 비스트로에 해당된다고 보면 되는데, 요즘은 비스트로는 알아도 트라토리아는 모르는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예전에는 가게 이름 앞에 트라토리아라고 써 놓은 곳들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자리에 PASTA PIZZA 같은 단어들을 넣는 게 일반적이 된 지 오래라...


상수동 트라토리아 챠오는 요즘 보기 드문, 트라토리아라는 이름이 걸맞는 트라토리아라 하겠습니다. 파스타 면은 주문 후에 삶고, 소스는 흥건하지 않으면서 맛은 충분히 내주고, 메뉴들이 모두 양도 넉넉하면서 가격도 좋습니다. 특히 평일 런치 세트는 너무 저렴한데, 고객들이 이리 먹었으면 하는 구성을 세트화하여 선보이는 느낌이 듭니다.



평일 런치 세트로 먹은 아말피 풍 샐러드, 스파게티 아라비아타, 폴로 알 포르노 Half(오븐에 구운 치킨 반 마리)입니다. 단품으로 먹었으면 12,000 + 12,000 + 10,000인데, 평일 런치 세트로 3만원.


캔 참치를 싫어하는 분이 아니라면 아말피 풍 샐러드는 충분히 맛있는 선택입니다. 오일 비네거 드레싱으로 버무린 아르굴라에서는 싱싱한 쌉싸름함과 새곰함이 살짜기 올라오고, 캔 참치, 감자, 반숙계란이 볼륨감을 더하며, 방울 토마토가 살짝 악센트가 되어 줍니다. 양 또한 푸짐해, 충분히 먹은 것 같은데도 좀처럼 줄지가 않더군요. 2인이 먹기에는 양이 좀 많고, 3~4인용의 에피타이저로서도 충분할 정도네요.


스파게티 아라비아타는 평범하게 맛있는 맛이랄까요. 맛있기는 했지만 저는 좀 더 특색 있는 쪽을 좋아하는지라... 이후에 먹어본 바로도 다른 파스타들이 만족도가 더 높더군요. 인상적인 것은 챠오처럼 본토 스타일의(소스가 흥건하지 않고, 간도 약간 강한) 파스타를 내는 곳들은 양이 참 박한 경우가 많은데, 챠오는 맛도 그렇지만 양도 (본토처럼) 푸짐하게 내줍니다.


폴로 알 포르노는 다릿살은 물론 퍽퍽살도 퍽퍽하지 않고 부드럽고 촉촉한 게 참 맛나더군요. 더군다나 프랜차이즈 치킨집 가격으로 레스토랑 닭 요리를 먹을 수 있으니 주문하지 않을 수 없는 메뉴랄까요. 다만 제가 먹었을 때는 날개 가슴살 쪽은 간이 괜찮았는데, 허벅지 다릿살 쪽의 간이 싱겁더군요. 별도의 소스가 있는 요리도 아니고 하니, 주방에서 좀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이 부드럽고 촉촉한 닭 살의 익힘도를 덜 익었다며 컴플레인하는 경우가 있나 보더군요. 입맛의 차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입니다만, 충분히 익은 것을 덜 익었다며 먹으면 탈이 날 거라 생각하거나, 가게의 솜씨를 탓하는 일은 좀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챠오에서는 온도계로 조리 상태를 체크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더 맛있어지기 위해서는 만드는 쪽의 노력도 필요하겠습니다만, 소비자 대중들의 지식 업데이트와 인식의 변화 없이는 한계가 있고, 어쩌면 후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평일 런치 세트의 양은 성인 남자 둘이서 탄산음료를 하나씩 시켜서 같이 먹었을 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양이었습니다. 혼자서 먹어보겠다 도전하시는 분도 간혹 계신데, 성공한 분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다른 날 저녁에 먹은 카르보나라 클래식(16,000). 부카티니 면을 사용하고, 크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카르보나라는 원래 크림이 들어가지 않는데, 한국서는 대부분 크림이 들어간 알프레도나 그 비스무리한 것을 카르보나라라고 팔고 있죠. 사실 저는 맛만 있으면 그런 건 그리 따지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오히려 오리지널 카르보나라에 대한 환상을 가진 분들이 넘 많다는 생각도 들구요.


한국서 오리지널 카르보나라에 대한 환상이 생기는 이유는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만화 '맛의 달인'에 오리지널 카르보나라에 대한 내용이 나와서 그렇다는 생각인데요. 덕분에 크림을 넣지 않았을 뿐 완성도는 별로인 걸 팔면서 유명세를 얻은 곳도 봤구요. 물론 챠오의 카르보나라 클래식은 제대로 완성도 있게 만든 음식이고, 맛있게 드신 분들의 간증도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챠오에서 맛있게 먹었던 다른 파스타에 비해 그리 만족도가 높지는 않았네요.(제가 먹었을 때 폼이 조금 떨어졌을 수도 있구요.) 저는 챠오의 알프레도가 더 맘에 들더군요. 혹여나 저처럼 클래식 카르보나라가 생각보다 와 닿지 않았던 분들은 펜네 알프레도 드셔 보심 좋을 듯요.



링귀네 봉골레(12,000). 기대보다 훨 맛있어서 깜놀했던. 오일 베이스 파스타의 제대로 유화된 소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더군요. 국물이 자작한 조개탕스러운 봉골레에 익숙한 분들께는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날 먹었던 아말피 풍 샐러드(12,000). 일행 중 어린이가 있어서 주문했는데 역시 잘 먹더군요. 입맛이 범상치 않은 어린이라 표본으로 삼기는 좀 부적당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만.



리가토니 포모도로(12,000). 포모도로는 별다른 부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기본 토마토 소스 파스타인데, 리가토니 면으로 포모도로를 만든 건 첨 먹어보네요. 토마토 소스의 감칠맛과 새곰한 산미가 입맛을 돋워주고, 야들하게 씹히는 리가토니도 좋습니다. 따끈할 때 먹으면 참 맛나는데 식으면 약간 매력이 떨어지니, 여럿이 나눠서 먹을 때 주문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구요.



오소부코(29,000).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간이 약간 싱겁게 느껴지는데, 먹고 바닥에 남은 소스는 간이 맞더군요. 고기에 소스를 듬뿍 찍어 드시길.



허니버터 치킨(18,000). 저는 폴로 알 포르노보다 허니버터 치킨이 낫더군요. 폴로 알 포르노는 별다른 양념이 없으니 허니버터 치킨에 비하면 약간 심심한 감이... 여튼 허니버터 치킨이든 폴로 알 포르노든 챠오의 세콘도 중에서 치킨 요리는 꼭 드셔 보시길. 요즘 배달 치킨도 이 정도 가격은 하는데, 같은 가격에 양식당에서 맛난 닭요리를 먹을 수 있으니 말이죠. 양념은 살짝 입혀져 있는 수준이고, 막 허니허니하고 버터버터한 맛은 아니니 걱정 말고 주문해 보세요.



리조토 비앙코(18,000). 좋은 리조토였습니다만, 어떤 맛이었는지는 기억이... ^^;



스테이크(400g 35,000). 100g에 9천원 꼴인데,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어도 이것보다는 더 나올 것 같죠. 가성비 참 좋은 스테이크에요. 솜씨도 좋으시구요. 홀그레인 머스터드랑 바질 페스토가 같이 나오는데, 고기 자체에 간이 제대로(강하게) 되어 있어서 별도의 소스는 필요가 없더군요. 여럿이 가서 와인 마실 때 주문하면 좋을 듯요.



펜네 알프레도(16,000). 메뉴판 설명대로 새우와 치즈로 찐~하게 맛을 낸 크림소스 펜네. 새우 맛이 밴 찐~한 크림소스 맛이 좋고, 새우 사이즈도 조리상태도 좋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카르보나라 클래식보다 펜네 알프레도가 더 맘에 들더군요. 한국서 숏 파스타는 일반적으로 인기가 높지 않은 편인데, 챠오의 숏 파스타는 둘 다 훌륭하네요.



브라우니와 바닐라 아이스크림(4,000). 챠오의 디저트는 고정적이지가 않은데, 없을 때도 있고, 있더라도 계속 바뀌더군요. 보통 브라우니는 카페에서 많이들 취급하는데, 어지간히 잘한다는 곳들 보다도 한 수 위였던. 찐한 초콜릿 맛도 훌륭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과의 어울림도 좋더군요.



포르치니 버섯 크림 소스의 뇨끼(20,000). 여름 감자는 수분이 너무 많아서 뇨끼를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동안 메뉴에서 빼셨었는데, 가을부터 다시 시작하시더군요. 한국 사람들이 쫀득한 식감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뇨끼를 만드는 곳도 많은데, 챠오는 살짝 졸깃하면서 입속에서 부드럽게 풀어지는 제대로 된 뇨끼를 만드시죠. 예전과는 소스가 달라져서 진하고 강한 맛이 나는 것이, 와인을 부르는 맛이더군요. 와인 드신다면 강추하고 싶은.



이것 역시 가을부터 시작하신 신메뉴 포르코 로쏘(12,000). 돼지고기와 내장을 넣어 만든 매운맛이 도는 스튜인데, 원래는 나폴리탄 소프리토(Napolitan Soffritto)라는 이름의 음식이지만, 셰프님께서 메뉴를 만들기 얼마 전에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감명 깊게 보셔서 이런 이름을 붙이셨다고. 고기도 맛있지만 내장의 진한 맛이 좋군요. 그리고 너무 저렴하기도. 신메뉴들이 다 맘에 쏙 드는군요. 많이 맵지는 않고, 술을 부르는 메뉴.



카치오 페페(Cacio e pepe 12,000). 챠오의 메뉴판에는 "재료만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써있죠. 해서 메뉴판에 없는 메뉴인데 부탁드렸던, 치즈와 후추로 만드는 심플한 파스타. 경질 치즈를 갈아 녹인 것을 면에 코팅한 파스타라 기본적으로 상당히 짠 편인데, 챠오에서는 여기에 레몬의 산미를 더해서 새콤 짭짤한 맛을 보여주시네요. 재밌고 맛있군요. 다만 이 짠 걸 혼자 다 먹기는 힘들 수 있으니(챠오 파스타 인심이 후하다 보니 더더욱), 여럿이 나눠서, 입을 씻어줄 와인과 함께 드시는 게 더 좋겠구요.



트라토리아 챠오는 본토(이탈리아) 맛을 지향하면서, 파스타 양도 푸짐하고, 요리 가격도 저렴한 좋은 곳입니다만, 혼자서 식사를 즐기거나, 각자 자기가 주문한 메뉴만 드시는 식사를 하시기에는(소개팅이라든가) 그리 적합한 곳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전채(안티파스토), 파스타(프리모 피아또), 요리(세콘도 피아또)를 주문해서 서로 나눠 먹는 게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방법인데, 양이 푸짐하다 보니 소수로는 이렇게 주문하기가 힘들고, 편한 사람 3~4명(맥시멈 6명) 정도를 모아서 함께 가시는 게 좋습니다. 코키지 정책도 좋고(4인 기준 1병 무료), 새벽 1시까지 영업한다는 것도 장점이구요.


세상에 넘쳐나는 곳이 파스타집이요 이태리 식당입니다만, 요리 스타일도 맛도 가격(양)도 모두 만족스러운 곳을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은데, 트라토리아 챠오가 바로 그 셋을 모두 만족시키는 가게라는 생각이네요. 특히나 홍대 쪽에서 맛있는 파스타, 맛있는 이탈리안을 찾으신다면 트라토리아 챠오를 일단 들려보시길.


PS : 챠오의 코키지 정책이 원래 코키지 프리였는데, 정책 변경이 있어 내용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맛 평점 = 8.7 (10점 만점)


※ 음식의 맛 평가는 가능한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업소 방문은 2015년 2월부터 10월에 걸쳐 수차례 이루어졌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27-1

070-8702-8077

낮 12시~새벽 1시 (일요일은 밤 10시)

낮 3시30분~오후 5시30분 브레이크 타임 (토, 일은 브레이크 타임 없음)

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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