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아이즈(ize)에 수요미식회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지난 9월 9일에 올라온 글인데, 평소 수요미식회를 즐겨 보지 않다 보니 방송을 보고 글을 쓰느라 원고 쓸 시간이 좀 부족하더군요. 해서 생각의 편린들이 정밀하게 접합되지는 않은 상태에서 원고를 넘긴 듯한 찜찜함에, 이미 올라간 원고를 다시 한 번 손을 봤네요.


한 번 비교해서 읽어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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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미식회]는 미식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을까?



tvN[수요미식회]는 재미있다. 매주 바뀌는 주제(음식)에 대해 수준 높은 지식과 담론이 오가며, 아는 얘기가 나오면 공감하는 재미가 있고, 모르는 지식이 나오면 배우는 재미가 있다. 일반인부터 전문가까지 다양한 입맛과 수준의 패널들을 통해, 해당 음식과 식당을 다양한 눈높이로 검증하는 것도 재미있다. 의견이 나뉘는 게 해당 식당을 더 궁금하게 하고, 음식을 더 먹고 싶게 만든다. 방송에 나온 가게는 어디든 줄과 예약이 대폭 늘어나고, 모든 패널들이 맛있다 칭찬하는 곳은 그것이 더더욱 극심해진다. 비록 [수요미식회] 스스로 맛집 소개 프로임을 부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기능하고 있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개되는 식당에 줄을 서게 만드는 [수요미식회]의 식당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요미식회]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집으로 꼽는 식당의 선정 기준은 원조 노포 식당의 역사가 그 음식의 역사가 된 집또는 맛이나 서비스, 분위기로 전국구적인 명성을 떨친 식당이다. 이 기준으로 [수요미식회]와 자문단이 식당을 선정한다. [수요미식회] 14회에서는 선정 기준이 은 아니며, 해당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식당을 선정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의 오래된 맛집은 부동산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산일보에 부산의 노포를 연재했던 맛칼럼니스트 박상현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래된 가게라고 하면 맛의 비법 같은 걸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아니에요. 부동산이에요. 가게 건물이 자기 거냐 아니냐의 문제인 거죠. 똑같은 시기에 시작해서 사라진 가게 중에 더 맛있는 집도 많았어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부산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한국의 맛집이 대부분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와중에 원조 노포 식당의 역사가 그 음식의 역사가 된 집에는 어떤 의미를 얼마나 두어야 할까?


[수요미식회]의 또 다른 식당 선정 기준인 맛이나 서비스, 분위기로 전국구적인 명성을 떨친 식당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유명한 식당보다 맛이나 서비스, 분위기가 더 좋은 가게가 있다면 [수요미식회]의 식당 선정에는 포함되지가 않는 걸까? [수요미식회]는 맛집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맛집을 검증한다. 그렇다면 오래되거나 유명한 가게의 맛, 서비스, 분위기를 검증하는 것만큼이나, 오래되지도 않았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그런 곳들에 비견할 정도로 맛, 서비스, 분위기가 좋은 가게를 찾아서 검증하는 것 또한 미식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길이 아닐까? 아니, 존속에 별 문제가 없는 전자의 가게들에 비해, 미래가 불투명한 후자의 가게들을 검증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은 아닐까? 해당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꼭 오래되거나 유명한 가게를 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집으로 선정해야만 가능한 걸까?


[수요미식회]의 기준으로는 이미 알려진 유명한 식당을 선정할 수밖에 없고, 개중에는 이미 바쁘거나 줄 서서 먹는 가게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방송 출연 후에는 더 늘어난 줄과 예약 때문에 몸살을 앓는 곳도 많다. 수요미식회의 이길수 PDYES24와 했던 인터뷰를 보면, 더 바빠지기를 원치 않아 방송 출연을 거부하는데도 촬영을 하고 방송을 내보내는 가게[각주:1]도 있다. 그런데 어떤 가게들은 방송 후에 바쁘기만 하고 매출은 더 떨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음료도 술도 주문 않고 저렴한 메뉴만 먹고 가는 손님들이 많아져서 그렇다는 얘기다. 때문에 단골집을 잃었음에 분노하는 사람, 손님이 너무 몰려서 맛을 유지하지 못함을 슬퍼하는 사람, 손님이 빠진 후에도 맛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렇다면 [수요미식회]는 매 회 시작과 함께 외치는 미식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모토를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수요미식회] 시청자들에게 한정한다면, [수요미식회]는 미식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방송 자체는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까지 하다. 이 정도로 수준 높은 음식 이야기와 정보를 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식당의 선정과 그로 인해 파급되는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그 과에 대해 [수요미식회]에만 책임을 오롯이 전가할 일은 아닐 것이다. 맛집에 대한 대중들의 지대한 관심에 비해, 맛집을 제대로 다루는 콘텐츠가 별로 없는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성장통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수요미식회]는 계속 변화하려는 듯 보인다. 초기에는 오래되고 유명한 맛집이 진짜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하려는 내용이 자주 보였다면(그래서 맛없지만 유명한 곳들도 많이 선정했다면), 지금은 오래되고 유명한 맛집 중에 정말로 맛있는 곳을 선정하여, 그 맛을 다양한 수준의 패널들에게 검증받고, 시청자들에게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가게를 찾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느낌이다. 29(812일 방송분)부터는 식당 선정 기준도 나오지 않는다. 기준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지해서일지, 아니면 식당과 아이템 선정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을 검증하는 과감한 기획도 선보였다. 그 내용이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느낌도 있지만, 시도 자체는 환영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방송 초기에는 식당 선정을 5, 4개씩 했지만, 지금은 한 주제 당 선정하는 식당이 3개밖에 되지 않는다. 주제 음식 외의 메뉴도 매 회 먹어보고 언급하는 모습도 필요하다. ‘툭툭누들타이에서는 똠얌꿍 외의 국물 요리도 먹어봤으면 또 다른 평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고, ‘편의방은 만두 외에도 훌륭한 메뉴들이 있는데, 방송에는 만두만 나와서 그런지 손님들도 만두만 먹고 가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자문단에 신선한 뉴페이스가 영입될 필요도 있지 않을까. 6회 파스타 편에서는 한국형 파스타의 시초로 광화문 뽐모도로를 언급했는데, 그것을 만들었던 박충준 셰프가 현재 스파게티가 있는 풍경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제작진을 알고 있었을지. 알았다면 그가 지금 만들어내는 파스타의 맛이 어떤지 살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식당의 개수는 출연진의 스케줄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추천 식당과 메뉴의 다양성은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언젠가 [수요미식회]가 진정 미식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미식의 별(음식 블로거)

  1. 최근 모처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가게의 허락을 받지 않고 방송을 내보내지는 않는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촬영 협조와 방송 여부는 별개라는 얘기. 이길수 PD의 인터뷰 내용 중 "식당에서 너무 심각하게 출연을 거절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방송에서 소개하지 못했던 적도 있어요."라고도 하니, 촬영 협조는 물론 방송 허락도 얻지 못한 경우도 있는 듯. [본문으로]

웹진 아이즈(ize)에 YG푸드의 삼거리 푸줏간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언젠가 음식 관련해서 원고료 나오는(= 대중들에게 널리 읽혀도 된다고 검증된) 글을 써보자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마침 재밌는 주제로 원고 청탁이 들어와서 쓰게 됐는데요. 써보니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이제 이런 글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예전에 잠시 글을 썼던 '월간 이리'는 무가지였고, 써보고 싶어서 썼습니다만 원고료는 없었죠. ^^;)


아직 못 보신 분들 계시면(아마 많이 계시겠지만 ^^;) 한 번 읽어보시죠. ^^

월간이리 2012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클릭하시면 PDF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젤라또와 아이스크림


일반적으로 젤라또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또는 이탈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을 칭하는 단어 정도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아이스크림과 젤라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스크림과 젤라또는 둘 다 재료를 휘저어 혼합하면서 온도를 낮추어 만드는데, 재료를 휘젓는 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며 그 특유의 질감과 식감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이스크림은 휘젓는 속도를 빨리, 젤라또는 느리게 하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에는 공기가 많이 들어가고 젤라또에는 공기가 적게 들어가 재료의 밀도가 높아지고 맛이 진해지게 된다.(밀도가 높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에 비해 빨리 녹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아이스크림에 공기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하겐다즈 등의 고급 아이스크림은 젤라또와 비슷한 정도로 천천히 휘저어 만들기 때문에 진한 맛을 낸다.


또한 유지방의 함량도 다른데, 아이스크림은 이름 그대로 우유나 크림 등의 성분을 넣어 얼려서 만든다. 반면에 젤라또는 우유나 크림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젤라또 중에도 우유를 베이스로 한 제품에는 물론 우유가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과일이나 넛츠류 등)에는 거의 또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이스크림보다는 젤라또에서 재료 본연의 맛을 좀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이 오리 간이라면 젤라또는 푸아그라, 아이스크림이 육우라면 젤라또는 1등급 한우라고나 할까.



깨끗하고 순수한 맛, 젤라띠 젤라띠


지금까지 한국에 오픈한 젤라떼리아(젤라또 가게)의 풍경은 쇼케이스 안에 젤라또 통이 여러 개 들어가 있고, 어떻게 생긴 젤라또인지 눈으로 보면서 고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젤라띠 젤라띠는 뚜껑이 달린 스테인리스 통에 젤라또가 들어있고, 통 옆의 팻말에 어떤 재료로 만든 것인지가 표기되어 있는 조금 생소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도 두 가지 방식의 가게가 모두 존재하는데, 후자가 온도 유지에 더 유리하고 따라서 맛을 더 일정하게(그러니까 맛있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젤라또 하나를 뜰 때 쇼케이스를 통째로 열어야 하는 전자의 방식이 아무래도 더운 공기의 유입이 더 잦은 건 사실이니 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젤라또를 먹어본 바로는 딱히 스테인리스 통에 개별보관을 한다고 해서 맛이 엄청나게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일단 맛을 보고 판단하기로 하고.


젤라띠 젤라띠의 젤라또는 이렇게 개별보관이 되어 있다.


젤라띠 젤라띠 또한 다른 젤라떼리아와 마찬가지로 테이스팅이 가능한데, 테이스팅 스푼에 떠주신 젤라또를 한 입 맛보는 순간 행복과 감동이 입안에서 몸으로 서서히 퍼져가는 느낌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 진짜가 나타났다고 할까. 지금까지 한국에 오픈한 젤라떼리아를 모두 뛰어넘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맛을 보여준다. 원재료를 젤라또라는 형태로 옮겨낸 그 순수하고 깨끗한 맛을 느껴보니, 뚜껑달린 스테인리스 통 정도가 아니라 2중 3중으로 안전장치를 해서라도 그 맛을 유지해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들더라는. 하지만 역시 젤라또를 눈으로 볼 수가 없다보니, 테이스팅은 커녕 가게 앞을 서성이다가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꽤 된다. 용기는 미인을 얻는 데도 필요하지만, 미식을 하는 데도 필요한 법이거늘.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긴 하지만, 젤라띠 젤라띠의 젤라또는 한겨울에 먹는데도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을 그런 맛이다. 맛도 좋지만 진한 풍미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스르르 녹는 그 식감과 질감을 한 번 접해본 분이라면 아마도 동의하시지 않을지. 어쩌면 한 겨울에 홍대 어드메서 줄을 서서 젤라또를 먹는 풍경을 보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젤라띠 젤라띠에서는 일단 콘으로 드셔보시길.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콘인데, 콘의 맛도 좋고 콘 속에 맛있는 초콜릿을 넣어주신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이 가격에 이 맛이면 그저 감사할 따름.


주소 : 마포구 서교동 407-8

전화 : 02-3144-3281

위치 : 극동방송국 삼거리서 상수역 방향 세븐일레븐 옆 골목(속칭 클럽 골목)

시간 : 일~목 낮12시~밤11시, 금~토 낮12시~새벽1시


월간이리 2012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클릭하시면 PDF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경양식 돈까스와 일식 돈까스


한국에서 돈까스는 크게 경양식 돈까스와 일식 돈까스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경양식 돈까스와 일식 돈까스는 둘 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음식인데, 경양식 돈까스는 1895년 긴자의 렌가테이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고(당시 메뉴 이름은 돈육 가쓰레쓰 豚肉ガツレツ), 일식 돈까스는 1929년 우에노의 폰치켄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돈까스를 만든 것은 당시 폰치켄에서 일하던 시마다 신지로라는 요리사라고 하는데, 당시 널리 퍼져있었던 포크 가쓰레쓰(아시겠지만 가쓰레쓰는 커틀렛의 일본 발음)를 개량하여, 고기 두께를 두툼하게 하고 칼로 썰어내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돈까스(豚カ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참고로 렌가테이는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으나 폰치켄은 없어진지 오래)


렌가테이의 명함과 간판의 그림은 개업 1년 뒤 서양화가 손님이 당시 긴자의 풍경을 그려준 것이다.


이러한 돈까스는 일제강점기(1910~1945)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당시에는 호텔이나 요정 등의 고급업소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터라 일반 대중에게는 거리가 먼 음식이었을 것이다. 1925년에 오픈한 한국 최초의 양식당으로 알려져 있는 서울역 그릴의 경우 은 식기와 은 촛대를 사용했을 정도의 최고급 업소였다고 하니, 대략 지금의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정도 된다고 보면 될까.(서울역 그릴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으니, 옛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한 번 가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전해진 돈까스는 경양식 돈까스이지 일식 돈까스는 아닌 듯하다. 일식 돈까스는 일본에서도 최신 문물이었기에 전해지지가 않은 걸까. 왜 최근까지도 일본서 10년 전에 유행하던 것이 한국에 최신 유행으로 들어온다는 얘기도 많이들 했고.

  

돈까스의 대중화


경양식 돈까스의 대중화는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고 6.25를 지나 고도성장기 초반이었던 60년대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1962년에 개점한 대구의 “미림”을 보면 초밥, 오뎅, 메밀, 생선탕 등의 일식 메뉴를 경양식 메뉴와 함께 팔고 있다.(미림은 아마도 현존하는 돈까스 취급 노포 중 가장 오래됐을 듯) 경양식 메뉴가 따로 독립한 경양식 레스토랑이 생기고 번성한 것은 70년대로 생각되는데, 그 시절 명동은 온통 경양식 일색이었고 대학가에는 유명한 경양식 레스토랑이 몇 개씩은 있었다고.


일식 돈까스의 유행은 1983년에 개점한 명동 돈까스를 시발점으로 보는데, 당시 일본의 동키 돈까스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오픈한 명동 돈까스는 호텔 돈까스보다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이후 일식 돈까스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명동에서 일식 돈까스로 유명한 가게는 1968년에 오픈한 것으로 알려진 서호 돈까스도 있으나, 지금은 가게가 없어진 탓에 서호 돈까스가 처음부터 일식 돈까스를 판매했는지, 그게 아니라면 언제부터 취급했는지 등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경양식 돈까스든 일식 돈까스든 이제는 유행에 뒤떨어진 음식이 되다보니, 제대로된 경양식 돈까스는 일부 노포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일식 돈까스는 획일화된 프랜차이즈 매장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메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최근 일식이 외식업계의 빅 웨이브로 자리잡고, 어렸을 적 추억의 맛을 찾는 손님들과 오래된 노포들을 매스컴에서 조명하는 등에 힘입어 돈까스의 재조명이 이루어지려는 움직임 또한 나타나고 있다.(실은 경양식의 재조명쪽으로 더 무게가 실려있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홍대 우사기식당의 돈까스 정식


우사기식당은 일식 돈까스류를 중심으로 한 메뉴를 선보이는 일식당으로, 돈까스 정식, 각종 돈부리, 규동, 벤또(최근 유행하는 치라시스시식의 족보없는 벤또 말고), 가츠나베 등을 판매하고 있다.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을 돈까스 정식(6천 원)은 돼지등심으로 만든 돈까스가 나오는데, 튀김옷은 딱딱하지 않으면서 바삭하고, 고기는 퍽퍽하지 않고 촉촉하면서 마치 안심처럼 부드럽다. 돈까스를 씹으면 마치 과자CF에서 과자 씹을 때 나는 듯한 바사삭 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 식감과 소리가 쾌감으로 다가오고, 고기는 등심인 만큼 좀 더 씹는 맛을 기대했지만 이런 촉촉한 부드러움이라면 고기의 부위나 맛의 방향성을 굳이 따질 생각이 들지 않는다.(간단히 얘기하면 껍질은 바삭 고기는 부드럽고 맛있다.)


돈까스 위에는 새우튀김이 한 개 올라가는데, 튀김 솜씨가 좋으니 새우튀김도 맛이 훌륭하다. 필자가 먹었을 당시에는 가라아게도 한 조각 곁들여졌는데, 닭 다릿살로 만든 가라아게의 속살이 너무나 촉촉하고 육즙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이 정말 일품이었으나, 최근 드셔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돈까스 위에 새우튀김만 하나 올라가 있었다고 하니 구성이 조금 바뀐 듯도 싶다. 가라아게만 따로 나오는 메뉴도 있으니(5천 원), 추가해서 드셔도 좋겠고.(가라아게 덮밥은 7천 원)

[※ 돈까스 정식은 현재 돈까스 위에 새우튀김 두 개가 올라갑니다. - 필자 주]


돈까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지만 특별히 맛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보니, 요즘 사람들이 돈까스에 기대하는 기대치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든다.(맛이 있건 없건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기도 하고) 아직 맛있는 돈까스를 찾는데 희망을 품고 있는 분들에게 우사기식당을 추천해본다.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튀겨진 맛있는 돈까스


밖에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데 안은 이렇게 정갈하다.



주소 : 마포구 서교동 332-11

전화 : 02-333-3066

메뉴 : 돈까스 정식(6천 원), 가츠동(6천 원), 텐동(8천 원), 굴튀김(5천 원), 세가지맛고로케(6천 원) 등



월간이리 2011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클릭하시면 PDF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 특산물과 명물

우리나라는 넓지 않은 땅덩이임에도 불구하고, 특색 있는 지역음식을 가지고 있는 고장이 많이 있다. 춘천 닭갈비, 강릉 초당두부, 천안 호두과자는 누구나 아는 대표적인 지역음식. 이러한 지역음식 중에는 자생적으로 탄생하여 널리 알려진 것도 있지만, 지자체의 개발과 홍보를 통해 유명해진 것 또한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한라봉은 일본에서 만든 시라누이(不知火)라는 품종을 제주 감귤농가에서 들여와서 키운 것으로, 부지화, 데코폰(시라누이 품종 감귤의 일본 상품명) 등의 이름으로 판매되다가, 98년 제주농협에서 이름을 한라봉으로 통일시켜 부르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지역 특산물 만들기는 30여년전 일본 오이타현에서 시작된 일촌일품(一村一品)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이타현의 58개 지역에는 표고버섯, 보리소주, 온실 감귤, 고등어 등의 특산물이 한 가지씩 있다고 한다. 이 일촌일품 운동은 성공적인 지역특성화사업의 교본처럼 여겨지고 있고, 세계 120여개국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이렇듯 특정 지역에서 생산 또는 시초가 되어 다른 여러 지역에서 소비되는 음식이나 상품을 특산물, 특산품, 명품 등으로 부르는데, 그에 반해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음식이나 상품을 보통 '명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특산물, 특산품, 명품은 명물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가 않은데, 명물은 특산물이나 특산품으로 부르면 어색한 느낌이 든다. '대구 명물 납작만두'는 어색하지 않지만 '대구 특산물 납작만두'는 좀 어색하지 않나.

음식 분야에 있어 명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 중 한 곳이 부산인데, 그 중에서도 돼지국밥과 밀면은 이제 아는 사람도 많고 먹어본 사람도 많은 전국구 명물이 되었고, 최근 씨앗호떡, 비빔당면 등이 부산의 새로운 신흥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연남동에서 비빔당면을 맛보다

얼마 전 연남동 기사식당 골목에 오픈한 부산 코너는 부산 명물인 비빔당면, 유부만두, 우뭇콩국 등을 파는 분식집이다. 분식집답게 떡볶이, 순대, 김밥도 메뉴에 있긴 하나, 가장 관심이 갔던 메뉴는 역시 비빔당면. 줄여서 비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식은 1박2일에서 이승기가 먹으면서 단숨에 온 국민이 다 아는 부산 명물이 되었다.

부산 코너의 비빔당면. 1박2일에 나온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모습이다.

TV에서 본 비빔당면은 삶은 당면 위에 약간의 고명과 양념장을 얹어 비벼먹는 것이었는데, 부산 코너의 비빔당면은 상대적으로 푸짐하게 올라간 고명이 눈에 띈다. 비벼서 맛을 보니 과연 서울 음식과는 달리 양념장이 달지가 않다. 매콤하고 칼칼한 양념장과 부드러운 당면이 어우러지는 맛이 과연 부산 명물. 먹으러 일부러 부산까지 갈 것은 없겠지만, 부산에 갔으면 한 번쯤 먹어볼만한 맛이다.

그런데 이승기가 먹은 그것과 부산 코너의 그것이 다른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승기가 먹은 비당은 국제시장 노점에서 파는 것으로, 그 원조는 길 하나 건너에 있는 부평시장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부평시장은 깡통시장이라고도 불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국제시장 명물로 알고 있는 비빔당면, 단팥죽, 유부만두 등의 4~50년 이상 된 원조집들이 모두 부평시장에 있다고 한다.

비빔당면의 경우 간판에 '원조 50년 비빔당면 전문점'이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소문난 분식"과 'SINCE 1963'이라고 써놓은 "원조 깡통골목 비빔당면"이 서로 원조집임을 자인하고 있는 듯. 가격은 원조 깡통골목 비빔당면이 4천원, 소문난 분식이 3천5백원인데, 맛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어 어디가 낫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둘 다 국제시장 노점보다는 나은 듯. 부산 코너 비빔당면의 비주얼 또한 확실히 국제시장의 것 보다는 부평시장의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부산 코너 비당은 3천원이니 부산까지 가는 차비에 더해서 5백원, 1천원이 빠지는 셈이려나.
 

맛있게 뽀오얀 멸치국물

비빔당면 외에 부산 코너의 국물이 맛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먹어보니 정말아주너무 맛있었다. 멸치를 듬뿍 넣어 우린 뽀오얀 국물은, 주변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노오란 다시다 국물과는 비교를 거부하며 차원을 달리한다. 진하고 시원하며 중심이 단단히 잡혀있는 그 국물을 한 모금 넘기면, 코끝을 스치는 멸치향과 함께 진심어린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국물이 맛있다보니 국물 들어간 메뉴는 모두 다 맛있다. 가볍게 오뎅 하나를 먹어도 좋고, 조금 더 비싼 수제어묵을 먹으면 더 좋다. 잔치국수로 요기를 하거나 유부만두로 입맛을 다시면 더욱 더 좋을 것이다.

잔치국수? 멸치국수? 이름에 관계없이 그는 이미 나에게 다가와서 꽃이 되었다.

Shall We 우뭇콩국?

그밖에 부산 코너의 메뉴 중 메뉴판에는 있지만 당장은 먹을 수 없는 메뉴로 우뭇콩국이 있다. 우뭇콩국은 우뭇가사리로 만든 묵을 채썰어서 콩국물에 말아낸 음식인데, 서울서 콩국수를 여름에 먹듯 우뭇콩국 또한 부산 여름 별미 중 하나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간 지가 한참인 지금, 부산 코너의 우뭇콩국을 맛보기 위해서는 내년 여름을 기약할 수밖에.

모쪼록 부산 코너의 우뭇콩국을 맛 볼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비빔당면과 잔치국수,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시는 담백한 유부만두와 푸짐한 부산김밥의 맛을 보다 많은 분들께서 즐겨주시길.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나도 여러분도 뜨끈한 멸치국물 대신 시원한 우뭇콩국과 함께 부산 코너의 맛난 메뉴들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위치 : 연남동 연남왕순대 맞은편. 연남돈까스 옆.

메뉴 : 떡볶이, 순대, 김밥, 우뭇무침 2천5백원 / 비빔당면, 잔치국수, 우뭇콩국 3천원 / 유부만두 4천원 / 김밥 반줄 1천5백원 / 수제어묵 7백원 / 오뎅, 계란 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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