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후기를 보면 "조선 선비들의 음식문화를 써 놓고 탐식가 이야기라고 우기는 것 같아 읽는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저자의 말 그대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남긴 음식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당시 음식문화의 편린을 알아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제목에서 기대한 미식적 관점에서의 무언가는 기대에 비해 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쉽다. 저자의 전공이 음식 쪽이 아닌 탓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도 가끔 눈에 띄고.


미식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내용으로는, 중세시대 서양의 수도원에서 와인과 치즈를 만들었듯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절에서 두부를 만들었다는 것, 오늘날 일식집에서 준사이(じゅんさい)로 부르며 가끔 먹게 되는 순채(蓴菜)가 고려 및 조선시대에는 인기 높은 기호식품이었다는 것(일제시대에 뿌리가 뽑혔고), 승기악탕(勝妓樂湯)스기야키(杉やき) 스키야키(すき焼き)의 상관관계 등이 있다.


(승기악탕 이야기는 조선 요리 승기악탕이 왜관에서 왜인들이 조선 관리들에게 대접하던 스기야키, 스기야키와 비슷한 이름의 스키야키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흥미롭기도 하고 어느 정도 신빙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비슷한 형식의 음식이라면 영향을 받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지금도 어디 가니까 된장찌개에 이런 것도 넣더라 하며 따라해 보지 않나.)


개인적으로 이러한 음식 이야기보다 오히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전횡에 대한 부분인데, 양반들 사이에서 큰 문제가 되는 죄를 지어야 비로소 유배를 가고, 그렇지 않은 잘못이나 죄의 벌로는 기껏해야 파직인데, 이게 조금 있으면 복직되고 또 문제 생기면 파직 그리고 다시 복직을 반복하는 벼슬아치들이 왜 이리 많은지.(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게 본인이 조선시대 역사를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문제인지, 대한민국 역사교육이 정신승리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데서 기인한 문제인지...)


여하간 한 번 쯤 읽어서 나쁠 건 없겠지만, 대단한 내용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는 정도의 책이랄까.

  1. 서울한량 2013.10.09 01:55 신고

    앗. 저도 이거이거 읽으려고 엿보고 있어요. 그 전에 <백석의 맛>을 먼저 보게될것 같지만요 ^^

    • 미식의별 2013.10.24 18:46 신고

      한 번쯤 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요. ^^ 근데 <백석의 맛>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함 읽어봐야 겠네요. 덕분에 새로운 책 알게되서 감사합니다. ^^


맛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째서 무엇을 맛있다 느끼고 무엇을 맛없다 느끼는가. 음식을 더 맛있게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책과 정보는 너무나도 많이 접할 수 있다. 다양한 요리책과 최신 레시피, 새로운 요리 기법과 조리 이론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렇게 만든 음식이 어째서 맛있어지는가, 어째서 맛있게 느껴지는가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단지 노력과 정성으로 음식이 맛있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는데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 책이 그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의 조리법에 대해 시중에서 쓰는 노력과 정성 운운하는 표현은, 그저 만드는 사람의 자기만족-또는 장삿속-에 불과한 것을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음식의 맛은 그에 합당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일 때 좋아지는 법이다.)


책의 내용에 의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혀를 통해 맛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혀를 통해 느끼는 맛은 다섯 가지에 불과하며(상식으로 알고 있을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실제 맛을 느끼는 데는 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밖의 촉감 식감 온도 등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어느 정도는 알려진 바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이론적 과학적 근거, 구체적인 예시와 설명이 들어있다는 게 이 책이 갖는 의의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향이 느껴지는 원리에 대한 부분에 조금 지나치게 깊은 내용과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 읽기에 좀 피로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책 4장에서 7장까지,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식품화학은 물론, 진화유전학에 뇌과학까지 동원해가며 향에 대한 내용에 치중하고 있는데, 모종의 집념이 느껴질 정도.(자신의 전공분야라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을 것도 같지만서도)


또한 저자가 식품 관련 저술을 하게 된 계기가, TV 등에서 잘못된 음식 상식과 지식을 남발하며 음식(특히 가공식품과 첨가물)에 대해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터라, 그러한 잘못된 지식과 그러한 것들을 팔아먹는 장사치들에 대한 억하심정이 책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 읽기에 조금 거슬릴 수도 있겠다.(한편으로는 가공식품과 첨가물을 옹호하는 태도와 이론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본인도 이러한 부분이 좀 거슬리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것이 전문분야인 만큼 세상의 몰이해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니. 사실 본인도 수시로 일어나는 음식 맛이나 맛집에 대한 허튼소리에 대해 못견뎌하고 한마디씩 하곤 하니까.)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보자면


설탕은 혀에 감지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대신 단맛이 오래간다. 이에 비해 과당의 단맛은 빠르고 강력하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재빨리 사라진다. 그리고 물엿은 단맛이 느리고 약하게 감지되지만, 단맛의 지속력은 길다.


MGS 1g이면 고기 200g에 해당하는 감칠맛을 얻을 수 있다.


아미노산계인 MGS(글루탐산)와 핵산계인 IMP(이노신산)와 GMP(구아닐산)가 만나면 훨씬 강한 감칠맛을 가진다. 다시다에 멸치나 버섯을 넣으면 다시다 한 가지를 넣을 때보다 몇 배나 감칠맛이 증가하는 것이다.(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글루탐산은 고기에, 이노신산은 말린 생선, 구아닐산은 버섯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대체로 온도가 상승하면 단맛은 증가(과당 제외)하고 쓴맛은 감소한다.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데 기본이 되는 맛은 짠맛이며 온도에 따라 가장 크게 변화한다. 짠맛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약해지고, 식으면 강하게 느껴진다.


맛은 안와전두피질에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이 합해져 느껴지는 감각으로, 뇌의 기능 중 가장 다중감각적인 현상이다. 뇌는 모든 감각에 직간접적인 영향의 결과로 이 음식물의 맛을 판단한다.


  1. 서울한량 2013.09.10 11:21 신고

    얼마전 <미각의 지배> 라는 책을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미각과 뇌과학을 연관지어 재미있게 풀이한 교양서였죠.
    음식맛을 이야기하려면 그에 관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본격 식품공학이 아닌 책들 중에서 즐겁게 읽어나가기 좋았습니다.
    헌데 제가 읽은건 아무래도 외국인용 버전(?) 이었나봅니다.
    이 책도 비슷한 내용같아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

    • 미식의별 2013.09.12 06:05 신고

      저 지금 미각의 지배 읽고 있습니다. ^^
      절반 정도 읽어본 바로는, 미각의 지배가 좀 더 학문적이라면 맛이란 무엇인가는 좀 더 실용적인 내용인 것 같네요.
      맛이란 무엇인가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구요. 저자가 2탄도 쓰고 계시다 하셔서 기대중입니다. ^^

    • 서울한량 2013.09.12 23:22 신고

      넷 ㅎㅎ 다행히 추석때 책읽을 짬이 조금 날것 같습니다.
      같은 주제를 한국인이랑 외국인이 풀어나가는 차이를 발견하는것도 재밌는 일이지요.

  2. joowon 2013.09.17 03:41 신고

    너무너무 오랫만에 댓글을 남기죠? 블로그 활동이 뜸하면서 그로 인해 맺어졌던 인연들도 잠시 뜸했었네요. ^^ 저 한국 들어온지 어연 1년이 다 되가요! 추석연휴 때 읽어볼 만한 책 하나 건졌네요. 연락해요~

    • 미식의별 2013.09.25 04:32 신고

      앗! 반갑습니다. 한국 들어오셨군요. 근데 벌써 일년이나 지나셨다니... 세월이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넘 빨리 지나가네요. 앞으로 블로그에서 종종 뵈요. ^^

American Terroir (2010년 미국, 2012년 9월 14일 한국)



책 표지를 보면 미국 도서관저널 선정 올해의 10대 필독서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인다. 읽고 나니 거기에 100% 공감하게 되었고.


이 책의 원제는 아메리칸 테루아(American Terroir)인데, 와인 용어로 흔히 접하게 되는 테루아라는 단어는 포도가 자라는 산지의 토양, 기후 등의 자연환경을 통틀어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라 보면 되겠다.


저자인 로완 제이콥슨은 이러한 테루아라는 개념을 농수산물 및 그 가공품 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장시켜, 북아메리카의 테루아를 기반으로 한 최고의 식품들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북아메리카에서 나는 최고의 식품들에 대해 그 맛과 품종, 생태, 성장 및 제조방법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테루아도 중요하지만, 그 테루아를 잘 읽어내고 최대한 활용하는 인간의 노력이 보태질 때 비로소 최고의 맛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것들이 과연 독자들에게 얼마나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 알라딘과 YES24의 독자 서평을 모두 읽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고의 맛"이 아닌 "테루아"에 방범을 찍고 책 내용을 이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한 땅에서 특별한 맛이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그 맛을 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 그리도 이해하기 힘든 것인지. 책의 수준이 높고 정보 밀집량이 상당한 탓에 전문가나 식덕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쉬이 다가오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맛=정성이라는 정신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니 그걸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겠고.


아쉬운 점은 이 책에 나온 식품들 중 현재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인데, 식덕으로서 이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그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생각이다.


여튼 좋은 걸 넘어서 훌륭한 책이니만큼 좀 더 많은 분들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목차에 따른 책 내용을 대략적으로 소개해 본다. 다만 책의 깊고 방대한 정보량 탓에 단편적으로만 짚고 넘어간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1. 파나마의 게이샤 커피

게이샤(Geisha)는 병해 저항성이 높다는 이유로 50~60년대 코스타리카와 파나마의 커피연구소에서 실험 중이던 야생종이었으나 생산성이 낮은 관계로 버림받은 품종이었다.

게이샤 커피(에스메랄다 스페셜)는 2004년 베스트 오브 파나마 옥션에서 데뷔하여 파운드당 21달러에 거래되었으나, 2007년에는 파운드당 130달러까지 가격이 올라갔으며, 2007년 당시 입찰자는 다음의 미국 7개 고메 커피 로스터들의 컨소시엄이다. 더 로스터리, 인텔리젠시아, 윌러비 커피 앤 티, 조커 커피 로스터 앤 티 컴퍼니, 포티나인스 패러랠 커피 로스터, 드라우드웍 커피 컴퍼니, 클라치 로스팅.[이들은 현재 현지 농장과 직거래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옥션에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옥션 경매가는 지금도 큰 변화는 없다.]


2. 멕시코 치아파스의 메소아메리카 초콜릿

스르륵 녹는 부드러운 초콜릿은 초콜릿을 치대는 콘치라는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는 생 코코아 콩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아세트산을 날려버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나, 다수의 향미가 날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통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만든 오돌토돌한 식감의, 포트와인과 견과류와 커피의 토대 위해 더해지는 말린 블루베리 같은 진한 과일 향이 나는 초콜릿은 대체 어떤 맛일까?


3. 버몬트 주 고지대의 메이플 시럽

메이플 시럽은 사탕단풍나무 수액을 가열해서 얻어지는데, 메이플 시럽 1리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탕단풍나무 수액 40리터가 필요하다.

메이플 시럽을 만들 수 있는 사탕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시기는 초봄의 몇 주에 불과하다.

메이플 시럽의 독특한 풍미는 단백질과 당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메일라드(=마이야르) 반응의 결과물인데, 수액 내의 단백질은 박테리아 증식으로 인해 만들어지며, 메이플 시럽을 만들기 위해 사탕단풍나무 수액을 가열할 때 수액 내의 과당과 아미노산이 결합하며 메일라드 반응이 일어난다.


4. 뉴잉글랜드,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더 사우스웨스트, 캘리포니아의 벌꿀

맛의 달인에도 나온 도쿄 한복판 긴자에서 양봉을 해서 꿀을 채취하는 긴자 허니 비 프로젝트의 꿀을 저자가 먹어본 최고의 벌꿀 중 하나라고 인증.

단일꽃 벌꿀은 일반 벌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과 향을 가지고 있으며, 야생 환경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단일 농작물 재배 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미국에는 3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벌꿀이 있고, 맛 또한 세계 최고라고.(저자가 최고로 이름난 유럽산 벌꿀들과 비교 시식한 결과) 하지만 미국산 벌꿀의 주요 고객은 미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는.

미국에는 이렇게 다양한 단일꽃 벌꿀을 가지고 우수한 미드(벌꿀술 Meed)를 만드는 양조가도 있다.


5. 화장기 없는 캘리포니아 와인

최근에는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 테루아를 충실히 반영하기보다는 과학적 테크닉으로 맛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신대륙 와인들은 더더욱) 역삼투압 기법을 이용해 알코올과 수분을 인위적으로 제거하여 알맞은 알코올 도수를 만들어내고, 산도와 색을 조절하기 위한 첨가물을 집어넣고, 미세산소를 공급하여 타닌을 인위적으로 부드럽게 만든다.

캘리포니아의 와인 양조가인 랜달 그램 또한 온갖 다양한 방법을 써서 와인을 만들어왔으나, 최근에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도입하여 테루아를 반영하는 와인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6. 버몬트의 맥주를 먹은 치즈

버몬트는 경사진 목초지와 암석질 토양을 가진 험한 구릉지인데, 이러한 환경에 적합한 가축은 스코틀랜드의 에어셔(Ayrshire) 품종 젖소였고, 이 품종의 젖은 특정 치즈를 만들기에 적합한 작은 지방구들(fat globules)을 함유하고 있다.

버몬트의 재스퍼 힐 목장은 생젖 치즈를 만들어 대박을 쳤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버몬트의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생산 가능한 소득원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즉, 버몬트의 테루아가 그 치즈들을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FDA 규정상 미국의 생젖 치즈는 (유해균 번식을 막기 위해) 판매 전 60일 이상을 숙성시켜야 하는데, 이는 제조 후 바로 출시가 가능한 유럽산 치즈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미를 가져다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재스퍼 힐 목장의 치즈는 프렌치 론드리에도 납품을 하고 있다.[한국에서는 프렌치 론드리에 납품하는 치즈로 김소영 씨의 안단테 데어리가 유명한데, 프렌치 론드리가 한 군데서만 납품을 받는 건 아닐테니]


7.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물 프리트

물 프리트(Moules-frites)는 벨기에식 홍합요리라 불리우는 바로 그것.(Moules는 홍합, frites는 프렌치프라이)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토양은 감자 외의 식물들이 자라기는 어려운 토양. 그래도 감자는 잘 자라서 무려 캐나다 생산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해안은 깊이가 얕고 바닥이 검은 탓에 햇볕을 받은 조류(藻類)가 왕성하게 자라나, 홍합의 먹이가 풍부하여 크기도 크고 맛도 좋다. 해서 매년 4천만 파운드(약 1만8천 톤)에 가까운 홍합을 양식으로 키워낸다.

"고개만 돌리면 감자와 홍합이 수확되는 광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벨기에에 얼마나 되겠는가."


8. 퓨젯 사운드 토튼 만의 굴

이스트 코스트 어패류 양식자 협회 주최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유일하게 10점 만점을 받은 굴을 양식하는 곳이 퓨젯 사운드의 토튼 만.

토튼은 플랑크톤이 매우 풍부하여 대규모의 굴 양식이 이루어지는 지역이나, 대부분 태평양 굴과 구마모토 굴을 키우고 있고, 그 중 일부에서만 특별한 맛의 토튼 아메리카 굴을 키우고 있음.

굴은 자라난 바다의 테루아를 고스란히 나타내기 때문에 토튼 만의 것과 같은 맛을 내는 아메리카 굴을 키워낼 수 있는 곳은 따로 없음.


9. 유콘 강 연어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는데, 거기에 필요한 만큼의 몸을 만든 후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유콘 강은 북아메리카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며, 이 먼 거리를 완주하기 위해 연어들은 (짧은 강에서 태어난 연어들에 비해) 엄청난 양의 지방과 근육을 만든다.(따라서 맛이 좋다.)

유콘 강의 유픽 에스키모는 유콘강 삼각주의 어업 독점권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연어를 수입원으로 하여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지켜나가는데 다른 에스키모 부족들에 비해 나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10. 멕시코 미초아칸의 천천히 익는 아보카도

아보카도가 맛있게 자라기 위해서는 풍부한 미네랄과 대량의 물이 필요한데 멕시코시티 서쪽 미초아칸의 산악지대는 아보카도가 자라기에 이상적인 환경이다.

미초아칸의 아보카도 나무들은 1년에 4차례의 개화기를 맞으며, 다양한 고도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숙성의 절정기에 달한 아보카도를 1년중 언제나 출시할 수 있다.(반면에 캘리포니아에서는 1년에 한 번만 아보카도를 수확할 수 있다.)

[국내에도 미초아칸의 아보카도를 수입하는 회사가 있는데 5월부터 냉동퓨레, 9월부터는 생과를 판매한다고. 그밖에 멕시코 식재료를 수입하는 또 다른 회사에서 운영하는 이태원의 멕시코 식당에서도 멕시코산 아보카도를 사용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과카몰레는 함 드셔보시는 것도...]

The Food of Love (2004년 미국, 2009년 11월 30일 한국)



시라노 드 벨주락의 이탈리아 요리사 버전.


이탈리아에 미술사를 공부하러 온 금발머리 미국인 아가씨를 이탈리아 플레이보이가 꼬시는 와중에 자신이 요리사라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요리사 친구에게 요리를 만들게 하는데, 실은 그 아가씨는 요리사 친구가 남몰래 흠모하고 있던 여인이었으니...


원제(The Food of Love)가 제목으로 더 걸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래도 좀 밋밋하기는 하니까.


이 책의 요리 부분은 꽤나 볼만하다. 재치있게 이탈리아 요리를 소개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책에 등장하는 요리가 맛있게 느껴지고 먹고싶은 욕구가 생기게 만든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책을 읽는 것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 식당에 가는 것과 같다."는 평을, 피플은 "감각적인 산문이 이탈리아의 풍광과 냄새, 맛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제이미 올리버 또한 "읽는 내내 매혹적인 이탈리아 요리를 맛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그러나 스토리적인 부분에서는 별로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대략 할리퀸과 칙릿을 섞어놓은 듯한 모양새를 보여주는데, 요리에 대한 부분이 진지한 만큼 스토리에서도 보다 진지한 느낌이 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할리퀸 독자는 할리퀸을 읽고 칙릿 독자는 칙릿을 읽으면 되겠지만, 이 책이 할리퀸이나 칙릿 독자를 위한 책인가 하는...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읽는 다면 추천할만 하다. 책 말미에는 책에 등장하는 요리의 레시피도 나오니 내킨다면 요리를 시도해 볼 수도 있겠다. 요리에 따라 좀 힘들긴 하겠지만서도. 토끼고기 요리와 포르케타(이탈리아식 돼지 통구이)는 아무래도 개인이 집에서 만들기는 쉽지 않을 테니.

Spiced to Death (1997년 영국, 2011년 7월 28일 한국)



미식가탐정의 이번 사건은 뉴욕에서 벌어진다. 500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향신료의 감정 의뢰를 받아 (런던에서) 뉴욕으로 날아간 우리의 미식가탐정. 향신료 감정으로 일이 끝난 줄 알았건만...


전작 "프랑스요리 살인사건"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인공인 미식가탐정은 실은 탐정이라기보다는 푸드 컨설턴트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으며, 탐정 면허도 없는 무늬만 탐정인 그런 사람이다.(미식가탐정-Gourmet Detective-은 일종의 별명 같은 것이라 보면 되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책 또한 마찬가지로 제목에 '살인사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이라기보다는 미식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탐정소설 형식으로 써내려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에서 추리적인 부분은 어디까지나 가벼운 양념에 불과하고 핵심은 미식에 있는지라, 심각하게 사건과 범인을 추리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비추하지만, 미식을 좋아하는 식덕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소설로는 이보다 나은 것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식덕이 아니라면 책이 얼마나 재미있게 느껴질지는...


단, 전작인 "프랑스요리 살인사건"이 탐정소설 매니아와 식덕으로서의 소양을 둘 다 요구한 소설이었다면(거기에 음악에 대한 지식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이번 "스파이스 살인사건"에서는 식덕으로서의 소양만이 필요한지라, 재미를 느끼기 위한 허들이 조금은 낮아졌다고 볼 수 있으려나. 어쩌면 탐정소설과 미식을 둘 다 좋아하는 독자층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작가가 변화를 준 것일 수도?


전작과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인종 전시장이자 문화의 용광로인 뉴욕이 무대인 만큼 주인공이 방문하는 식당과 등장하는 음식의 종류 또한 더욱 다양해졌다. 중동요리, 중화요리, 캐나다요리, 멕시코요리, 오스트리아요리, 아프리카요리에 이르기까지...(여담이지만 역시 뉴욕이 무대인 1989년작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면, 조크의 소재로 아프리카 식당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역시 뉴욕...이라는 느낌이랄까.)


미식가탐정 시리즈는 총 8편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국내에는 2탄인 "스파이스 살인사건" 이후로는 출간이 불투명한 느낌이라 식덕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모쪼록 지금부터라도 보다 많은 분(식덕)들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The Gourmet Detective (1994년 영국, 2010년 7월 19일 한국)



주인공은 런던의 미식가탐정(Gourmet Detective). 진짜 탐정은 아니고 푸드 컨설컨트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하는 일은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나 와인을 찾아주거나, 새로 오픈하는 식당의 컨셉에 대한 상담(예를 들면 중세요리 전문 레스토랑) 등이다. 그런데 어느 날 런던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한 곳의 주방장이 찾아와서는 라이벌 가게의 인기 메뉴 레시피를 알고 싶다는 의뢰를 하는데...


미식가탐정은 미식가이자 탐정소설 매니아이며 음악 애호가이기도 한데, 덕분에 책에는 온갖 음식과 탐정소설이 끝이지 않고 계속해서 등장하며, 주인공이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항상 분위기와 상황에 맞는 음악을 트는 모습을 볼 수 있다.(그러니까 아마도 셋 다 작가의 취미겠거니 하는 생각이고)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독자층이 좀 한정되는 느낌이라, 음식과 탐정소설과 음악에 지식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은 분이라면 얼마나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지...(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면 더 재미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는 아니긴 한데) 비유하자면 자동차도 레이싱걸도 잘 모르는 여성이 모터쇼를 보러 가는 것과 자동차도 레이싱걸도 잘 아는 남성이 모터쇼를 보러 가는 것과 비슷한 차이가 있달까.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주된 소재는 미식이며 탐정소설이라는 형식은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도구에 불과한지라, 심각하게 사건과 범인을 추리하기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스토리를 편안하게 즐기시는 게 옳은 감상법일 듯.


특이한 점이라면 한국에 대한 언급이 몇 번 나오는데, 작가가 한국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간 식덕에게 이 정도 재미를 안겨줄만한 소설은 그닥 없으리라 생각되며, 식덕에게는 감히 축복과도 같은 소설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듯.

  

PS : 책 249p를 보면 "골르아즈"에 대해서 달걀노른자를 넣은 닭고기 요리라는 주석이 달려있지만 정황상 담배인 듯한데...


제목 그대로인 책. 조선시대의 음식문화에 대해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 음식문화를 다루는 책들은 단편적 지식과 에피소드의 짜깁기 형식인 것들이 많은데, 이 책은 많은 사료와 역사적 사실들을 가지고 조선시대의 음식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책은 크게 둘로 나누어 1부에서는 계급에 따른 상차림과 음식문화, 혼례와 제례의 음식문화, 외식문화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고, 2부의 찬품각론에서는 당시 먹었던 음식의 유래, 만드는 법, 소비형태 등에 대해 카테고리별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책 내용 중 흥미로운 사실을 몇 가지 이야기하자면 조선시대의 상류층은 1일 7식을 먹었고, 밥은 흰 쌀밥과 함께 팥물밥(팥을 삶은 물에 밥을 짓는 것)을 자주 먹었으며, 추어탕이 고깃국물에 송이 등 각종 버섯, 소 내장까지 넣어 끓이는 굉장히 호화로운 음식이었다는 것과(이는 오늘날의 소위 서울식 추탕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조선 초까지도 버터를 먹었고,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김치에 천초(초피, 제피)를 넣었다는 것 등이 있겠다.


다만 저자는 찬이 수십 가지가 깔리는 지금의 한식문화를 전통의 변질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변질된 부분도 있지만 변화된 부분도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궁중요리가 일제시대의 고급 요릿집 요리로 변질되며 각 요리의 형태 등에 있어서 전통의 맥이 단절되었다는 생각은 들지만서도.(확실히 구절판은 전통 요리가 요릿집 요리로 변질된 것이라는 것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요즘 한식 세계화다 뭐다 말이 많은데 갈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거기에는 과거 식민지 시절과 6.25를 거치며 전통의 계승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클 것이고.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는 어떠했는지를 자세히 되짚어보면 좀 더 올바른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전통의 무분별한 복원은 단순한 과거의 카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 트위터에서 한식의 세계화 이전에 한식의 현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한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국 사람이 먹어서 한식이라 느끼면 한식이라는 얘기도 했고. 나로서는 이것이 앞으로 한식이 나아갈 길에 대한 중대한 키워드라는 생각인데 다른 분들께는 어떻게 와 닿을지 모르겠다.


그저 모쪼록 좀 더 맛있고 새로운 한식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래본다.


Der Duft Des Kaffees (2005년 독일, 2006년 8월 한국 초판, 2011년 12월 한국 재판)



커피와 카페 문화가 인문 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이 얘기에는 대체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만약 커피가 없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이 소설은 후자의 질문에 대해 음모론적인 시각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내용인즉슨, 어느 날 독일에서 가장 큰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집단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은 누가 어째서 일으킨 것이며, 그렇다면 커피를 구할 수 없게 된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만약 커피가 없어진다면...이라는 것인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커피의 역사와 문화, 커피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들에 대해 서술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말하자면 커피가 이렇게 대단한 영향을 끼쳤으니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그런 것이랄까. 따라서 커피 애호가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곳곳에 산재해있고, 그러한 내용들이 책의 재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반대로 커피를 잘 모르는 분들은 재미를 느끼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범인의 추적과 사건의 해결을 중점으로 보는 것도 이 책의 재미를 느끼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다.(사실 본인이 추리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한 탓에 재미를 좀 잃어버린 경우)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커피 덕후의 색다른 커피 예찬론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커피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식견과 애정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브리오니는 개인 커피점을 운영하는 커피 로스터인데,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 커피농장을 방문하고, 자신만의 이상적인 배합을 가지고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는 커피 장인이며, 대형 커피 회사들의 저질 커피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이다.(그런 커피는 나도 진짜진짜 싫다.)


라떼나 아메리카노보다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분께서(핸드드립이라도 상관없겠고),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맛 좋은 개인 커피점들을 찾아다니는 분께서 커피를 소재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편 읽고 싶다면 추천드리고 싶다.(노파심에서 하는 얘긴데 사건이나 범인에 너무 집중하지 않는 것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이 책에 나오는 커피의 유럽 전파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책 내용 중 오스만 투르크(터키)가 빈(비엔나)을 침공했을 때 오스만 투르크가 패하면서 남기고 간 커피가 오스트리아에 들어왔고(1683년) 그 이후로 유럽 전역에 커피가 퍼졌다는 내용이 있다. 한데,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 '파스카 로제'는 1652년에 생겼고(그 이전에 1637년 옥스퍼드에 커피하우스가 생겼다고도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1645년에(1630년이라고도) 최초의 카페가 오픈했다고 하니 유럽 커피문화의 진원지가 어디였는지에 대해서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할지 아리송한 구석이 있다.(커피의 기원 자체는 아랍의 이슬람 문명이며, 세계최초의 커피 하우스는 1475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 생겼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하는 것 같지만)


어떤 문화가 시작된 지역과 번성한 지역이 꼭 같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긴 하지만, 자세한 문제는 전문 사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할까나.

TOO MANY COOKS (초판 발행 1977년 12월 1일, 중판 발행 2003년 1월 1일)


세계 최고의 명요리장들이 5년마다 모이는 정기 모임.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는 이 모임의 주빈으로 초대받아 명 요리장들의 요리를 먹고 마시며 '고급요리에 미친 미국의 공헌'이라는 연설을 하러, 조수(겸 수행비서격인) 아치 굿드윈과 함께 뉴욕에서 머나먼 남부 시골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데...

이 책 정말 오래된 책이다. 1930년대에 쓰여지기도 했지만 77년에 번역된 책이니 말이지. 덕분에 사용된 단어나 표현 등이 오래된 느낌도 들고, 지금은 다른 식으로 적는 외국어(인명, 요리명 등)도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글레비(그레이비), 파세리(파슬리), 블리아 사발랑(브리야 사바랭), 시들(시드르) 등. 2003년에 중판이 나왔지만 아마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냥 찍은 듯.

주인공인 네로 울프가 미식가 탐정이라고 하여 전부터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마술사가 너무 많다"를 읽고, 그 제목과 캐릭터가 "요리장이 너무 많다"의 패러디라는 해설이 있어 그럼 이참에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다 읽고 나니 두 작품의 연관성은 제로에 가까운지라 꼭 둘 다 보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

렉스 스타우트가 네로 울프를 미식가로 만든 것은 작가 본인이 파리 체류 시절 미식가로 눈을 뜬 것에 기인하는데, 작중에서 네로 울프는 집에 전속 요리사를 상주시켜 자신이 먹고 싶은 온갖 요리를 모두 만들게 하고, 세계 최고의 명요리장 중 한 명인 마르코 뷰크식의 친구이며, 명요리장 중 최연장자인 루이 세르반에게 명요리장 모임에서 연설을 부탁받기도 하는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미식가라 할 수 있다.(엄청나게 뚱뚱하기도 하고)

런데 네로 울프의 특이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증거 수집은 모두 다른 사람(조수인 아치 굿드윈, 클래머 경감 등)을 시키고, 증인 심문은 자기 방으로 사람을 불러서 하며, 집에서 1만 그루의 난초를 키우고, 돈을 엄청나게 밝힌다.(이런 생활을 유지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긴 하겠다만)

책 내용에 있어서는 사건 전개가 "절대미각 식탐정" 식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특별히 미식에 식견이 없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2012년 현재 이 책을 읽어야 할 당위성은 그닥 찾아보기 힘들지 않나 하는 느낌. 이 책에 적당한 독자라면 30년대 미국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기에 읽고 넘어가야겠다는 추리소설 매니아 또는 본인처럼 먹거리가 관련된 콘텐츠에 흥미가 많은 사람 정도 아닐까.

물론 미식에 대한 식견이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구석이 있고, 미식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조금 이해가 안가는 구절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요즘 사람들은 서양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하겠지만, 과연 77년 초판 발행 당시의 독자들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책 뒤에 인명과 요리명이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기는 한데, 정말 '간단'하게 되어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에스코피에 - 프랑스의 근대 명요리사", "글래쉬 - 헝가리의 쇠고기 요리" 뭐 이런 식이라.

석한 점은, 원서에는 책에 나오는 명요리장의 18가지 요리 레시피가 실려있다는데, 역자 분께서 친철(-_-)하게도 "일반 독자에게는 그다지 흥미가 없으리라고 생각되므로 소개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해놓으셨다. 확실히 77년의 독자들에게는 흥미를 떠나서 이해가 힘든(또는 번역이 힘든) 내용이었겠지만...

하지만 네트는 광대하기에 INSPIRED BY WOLFE라는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 블로그에서는 네로 울프가 먹은 음식들을 직접 요리하여 그 과정과 완성품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유감스럽게도 자세한 레시피는 나와있지가 않은데, 것도 그럴 것이 본토에서는 아마도 각 작품마다 나오는 음식에 대한 레시피가 첨부되어있을 것이고, The Nero Wolfe Cookbook이라는 책까지 나와있을 정도니 굳이 자세한 레시피를 적을 필요도 없고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할 것 같다. 그래도 이 블로그 덕분에 가장 궁금했던 요리를 알 수 있었으니... 울프가 너무나도 간절하게 레시피를 원했던 "소시스 미뉴이"가 뭔지를 알게 됐는데, 그 정체는 거위와 꿩으로 만든 소세지였다는.

참고로 사건의 무대인 "카노와 수퍼"는 원서에는 "카노와 스파(spa) 리조트"라고 되어 있다고. 역시나 77년 번역의 한계와 문제점일 텐데, 요즘 번역이었다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 TylerCJKim 2017.05.24 03:48 신고

    분명 한글이고 이해 못할 단어나 문장도 없는데 읽히지가 않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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