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2012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클릭하시면 PDF 파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경양식 돈까스와 일식 돈까스


한국에서 돈까스는 크게 경양식 돈까스와 일식 돈까스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경양식 돈까스와 일식 돈까스는 둘 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음식인데, 경양식 돈까스는 1895년 긴자의 렌가테이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고(당시 메뉴 이름은 돈육 가쓰레쓰 豚肉ガツレツ), 일식 돈까스는 1929년 우에노의 폰치켄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돈까스를 만든 것은 당시 폰치켄에서 일하던 시마다 신지로라는 요리사라고 하는데, 당시 널리 퍼져있었던 포크 가쓰레쓰(아시겠지만 가쓰레쓰는 커틀렛의 일본 발음)를 개량하여, 고기 두께를 두툼하게 하고 칼로 썰어내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돈까스(豚カ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참고로 렌가테이는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으나 폰치켄은 없어진지 오래)


렌가테이의 명함과 간판의 그림은 개업 1년 뒤 서양화가 손님이 당시 긴자의 풍경을 그려준 것이다.


이러한 돈까스는 일제강점기(1910~1945)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당시에는 호텔이나 요정 등의 고급업소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터라 일반 대중에게는 거리가 먼 음식이었을 것이다. 1925년에 오픈한 한국 최초의 양식당으로 알려져 있는 서울역 그릴의 경우 은 식기와 은 촛대를 사용했을 정도의 최고급 업소였다고 하니, 대략 지금의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정도 된다고 보면 될까.(서울역 그릴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으니, 옛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한 번 가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전해진 돈까스는 경양식 돈까스이지 일식 돈까스는 아닌 듯하다. 일식 돈까스는 일본에서도 최신 문물이었기에 전해지지가 않은 걸까. 왜 최근까지도 일본서 10년 전에 유행하던 것이 한국에 최신 유행으로 들어온다는 얘기도 많이들 했고.

  

돈까스의 대중화


경양식 돈까스의 대중화는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고 6.25를 지나 고도성장기 초반이었던 60년대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1962년에 개점한 대구의 “미림”을 보면 초밥, 오뎅, 메밀, 생선탕 등의 일식 메뉴를 경양식 메뉴와 함께 팔고 있다.(미림은 아마도 현존하는 돈까스 취급 노포 중 가장 오래됐을 듯) 경양식 메뉴가 따로 독립한 경양식 레스토랑이 생기고 번성한 것은 70년대로 생각되는데, 그 시절 명동은 온통 경양식 일색이었고 대학가에는 유명한 경양식 레스토랑이 몇 개씩은 있었다고.


일식 돈까스의 유행은 1983년에 개점한 명동 돈까스를 시발점으로 보는데, 당시 일본의 동키 돈까스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오픈한 명동 돈까스는 호텔 돈까스보다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이후 일식 돈까스 가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명동에서 일식 돈까스로 유명한 가게는 1968년에 오픈한 것으로 알려진 서호 돈까스도 있으나, 지금은 가게가 없어진 탓에 서호 돈까스가 처음부터 일식 돈까스를 판매했는지, 그게 아니라면 언제부터 취급했는지 등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경양식 돈까스든 일식 돈까스든 이제는 유행에 뒤떨어진 음식이 되다보니, 제대로된 경양식 돈까스는 일부 노포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일식 돈까스는 획일화된 프랜차이즈 매장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메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최근 일식이 외식업계의 빅 웨이브로 자리잡고, 어렸을 적 추억의 맛을 찾는 손님들과 오래된 노포들을 매스컴에서 조명하는 등에 힘입어 돈까스의 재조명이 이루어지려는 움직임 또한 나타나고 있다.(실은 경양식의 재조명쪽으로 더 무게가 실려있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홍대 우사기식당의 돈까스 정식


우사기식당은 일식 돈까스류를 중심으로 한 메뉴를 선보이는 일식당으로, 돈까스 정식, 각종 돈부리, 규동, 벤또(최근 유행하는 치라시스시식의 족보없는 벤또 말고), 가츠나베 등을 판매하고 있다.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을 돈까스 정식(6천 원)은 돼지등심으로 만든 돈까스가 나오는데, 튀김옷은 딱딱하지 않으면서 바삭하고, 고기는 퍽퍽하지 않고 촉촉하면서 마치 안심처럼 부드럽다. 돈까스를 씹으면 마치 과자CF에서 과자 씹을 때 나는 듯한 바사삭 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 식감과 소리가 쾌감으로 다가오고, 고기는 등심인 만큼 좀 더 씹는 맛을 기대했지만 이런 촉촉한 부드러움이라면 고기의 부위나 맛의 방향성을 굳이 따질 생각이 들지 않는다.(간단히 얘기하면 껍질은 바삭 고기는 부드럽고 맛있다.)


돈까스 위에는 새우튀김이 한 개 올라가는데, 튀김 솜씨가 좋으니 새우튀김도 맛이 훌륭하다. 필자가 먹었을 당시에는 가라아게도 한 조각 곁들여졌는데, 닭 다릿살로 만든 가라아게의 속살이 너무나 촉촉하고 육즙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이 정말 일품이었으나, 최근 드셔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돈까스 위에 새우튀김만 하나 올라가 있었다고 하니 구성이 조금 바뀐 듯도 싶다. 가라아게만 따로 나오는 메뉴도 있으니(5천 원), 추가해서 드셔도 좋겠고.(가라아게 덮밥은 7천 원)

[※ 돈까스 정식은 현재 돈까스 위에 새우튀김 두 개가 올라갑니다. - 필자 주]


돈까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많지만 특별히 맛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보니, 요즘 사람들이 돈까스에 기대하는 기대치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든다.(맛이 있건 없건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기도 하고) 아직 맛있는 돈까스를 찾는데 희망을 품고 있는 분들에게 우사기식당을 추천해본다.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튀겨진 맛있는 돈까스


밖에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데 안은 이렇게 정갈하다.



주소 : 마포구 서교동 332-11

전화 : 02-333-3066

메뉴 : 돈까스 정식(6천 원), 가츠동(6천 원), 텐동(8천 원), 굴튀김(5천 원), 세가지맛고로케(6천 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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